나는 흔들리는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겨본 적이 있다.
밤새 등을 밝혀본 적이 있고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창인 채로도 바깥을 꿈꿔본 적이 있다.
빛과 동시에 존재하는 눈사람을 알고 있고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닌 것들을 알고 있다.
소설을 조금은 덜 사랑하고 싶다고, 소설과 삶을 분리한 채 살고 싶다고 한쪽에선 늘 생각했지만, 내가 자기혐오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뗄 수 있었다면 그건 모두 소설을 쓰던 시간 덕분이었다.
언제부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새 인물을 구상할 때면 그의 2020년을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가 그해에 어떤 곳에서 잠들고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무엇을 제일 두려워했는지. 지난 삼년의 시간이 어떤 무늬로 그 사람의 오늘에 남아 있을지.
『마주』는 202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여기 우리 마주」에서 출발했다. 2021년 한해 동안 계간 『창작과비평』에 일부를 연재했고 2023년 봄까지 연재분 이후를 계속 썼다. 『마주』의 주 시간대는 「여기 우리 마주」의 2020년 봄 이후인 202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팬데믹 속에서 감각했던 타인들이 그 이전을 계속 살아온 사람들인 것처럼, 그리고 그 이후를 계속 살아갈 사람들인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이 가능한 그 안에 긴 시간을 품고 있길 바랐다.
(…)
횡단보도에서 사람들과 무심코 스쳐지나가다가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건물과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거기 있는 모두가 2020년을 겪고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오늘에, 내일과 모레에, 이 소설이 못 다한 이야기처럼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2023년 여름
소설 하나를 끝내고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시간이 계절이 바뀌는 것과 맞물릴 때가 많았다. 한 소설의 마지막 퇴고를 끝내고 나면 나무의 색깔과 소리가 달라져 있었고, 어느새 다음 소설이 와 있었다. 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 사이, 가는 소설과 오는 소설 사이에서 자잘한 소름을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오래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
소설이 써지지 않아 일지를 쓰게 될 때가 있다. 2020년 봄도 그런 시기 중 하나였다. 쓰고 있던 소설이 있었지만 진척이 되지 않았고 어떤 서사 장르에도 즐겁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2020년 봄의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쓰던 소설을 접고 2019년 12월 31일에서 시작하는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 아무 형식도 맥락도 얻지 못해 어디에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내 안의 어떤 감정에 대한 일지였다고도 기억한다. (……) 수상 전화를 받고 12년 전 등단 전화를 받던 때가 떠올랐다. 쓰는 일에 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큰 격려와 지지를 건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떤 것을 쓰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떠나 완전히 다른 것을 쓰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소설 한 편을 완성하고 났을 때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어떤 식으로든 다음 소설에 대한 약속이 되어주었던 것을 기억하겠다. 소설을 통해 열리고 연결되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계속 쓰겠다. - 수상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