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게 잠이 들고 막막하게 아침을 맞았다. 아름답게 시작하여 행복하게 끝나고 싶었다. 사라져 버린 모든 것들을 만나고 싶었다.
밤이 점점 넓어지는 어느 겨울 저녁 머리가 빙빙 돌고 나는 흔들거리는 세계를 보았다. 감각이 없는 아름다운 침묵으로 살고 싶었다.
아름답기만 한 세상은 없을지라도 슬픔이 없는 삶이고 싶었다. 낮이 점점 넓어지는 계절 무렵, 꽃의 향기가 온몸을 적실 무렵 나는 다시 무심하게 아침을 맞을 것이다.
감각과 슬픔이 없는 아름다운 침묵으로 이쪽의 시간과 저쪽의 시간을 모아 그 경계를 넘어, 바람 한 자락에 설익은 다섯 번째 열매를 세상에 내보낸다.
2023년 여름
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