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이라는 것을 쓸 때마다 무진장 쑥스럽다. 원고를 쓸 때면 내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을 수 있는데, ‘작가의 말’이라는 제목을 달고 무슨 말을 하려면 내 소설을 굉장히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거나 읽는 사람에게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괜찮은 농담을 던져 놓고 “이 농담이 웃긴 점은 말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 단언컨대, 어떤 멋진 농담도 이렇게 사족을 달기 시작하면 망한다.
그런 쑥스러움과 민망함을 딛고 『누나가 사랑했든 내가 사랑했든』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이 소설은 첫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서는 첫사랑을 이미 해 본 사람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모두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라는 유명한 속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는 행운 넘치는 사람이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러나 첫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이건 첫사랑을 하는 청소년들이 순수하지 못하다거나,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가 아니다. 첫사랑은 운 좋게 서로 마음이 통한다 해도 서로 사회적, 경제적 여건을 생각하지 않는 순수하고 저돌적인(그래서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첫사랑은, 돌아보지 않는 상대방을 무작정 쳐다보는 외사랑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첫사랑은 이루어지면 신기한 일이고,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추억을 곱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첫사랑이란 ‘특별하고 애절한 사건’이다.
『누나가 사랑했든 내가 사랑했든』에서는 그 특별한 사랑이 조금 더 특별한 경우를 그려 보고 싶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평범한 일일 테다. 하지만 남매가 한 남자를 좋아하는 건 또, 특별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비비 꼬인 사정을 뚫고 독자 여러분이 ‘어떤 처지이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그러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곱씹어 주셨으면 하고 바란다.
그 평범한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등장인물들도 평범한 청소년들로 내세우려고 애썼다. 성준이는 동성애자라는 점만 빼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적에 애타고 친구 관계에 신경 쓰는 고 3이다. 예경이는 대학에 갓 들어가서 멋져 보이는 선배에 가슴 두근거려 하는 아가씨다. 희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제삼자가 보기에는 대체 왜 저 애에게 반하나 싶은 흔하디흔한 대학생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엮어 나가는 툭탁거리는 첫사랑 이야기. 한마디로 이 이야기는 ‘소설(小說)’, 거창하지 않은 사소한 이야기이다. 이 흔하고 사소한 이야기에서 특별하고 반짝거리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독자 여러분의 능력일 것이다.
『누나가 사랑했든 내가 사랑했든』이 나오는 데 빚을 진 분들이 많다. 창비 청소년출판부와 처음 인연을 맺게 해 주신 박상준 님, 오랫동안 원고를 기다려 주고 게으르고 고집 센 작가와 줄다리기를 하느라 힘드셨을 편집부 여러분, 요즘 청소년들과 동성애자의 문화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준 문계린 양, 타리 님, MECO 님, 늘 뒤에서 든든하게 나를 버텨 주고 포용해 주는 남편과, 존재 자체로 고마운, 이제 한참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선우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단편은 크리스마스에 얽힌 요정 이야기(fairy tale)의 변주이다. 갈 곳 없는 아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꼭 요정 대모일 필요는 없을 테다. 무심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절한 외계인들이 운 좋은 사람들을 가끔 도와줄지도 모르고, 그 도움이 전해지는 장소가 서점이라는 건 내게는 썩 그럴듯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