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때에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이 책은 허구이다. 한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비유적으로 삶의 수수께끼와 진리를 밝히려는 우화 소설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쓰나미’가 여러 번 등장한다. 쓰나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쓰나미를 죽음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주인공은 섬에 정기적으로 밀어닥치는 쓰나미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를 계기로 삶의 중요한 질문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용감하게 삶의 진리를 찾아 여행길을 떠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9라는,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조차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의 지진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엄청난 쓰나미가 연안 마을들을 덮쳤다. 쓰나미의 최대 높이가 38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는 10층 건물을 삼켜 버릴 정도의 높이이다. 우리의 시선은 연일 텔레비전 보도에 못 박혔다. 화면에 비치는 대참사의 현장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CG가 아닌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대재해’라고들 했다. 그리고 이 대재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려 하고 있다.
나는 열여섯 살 겨울부터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내 방으로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있던 나를 갑자기 두들겨 팬다. 우리 집에서는 드문 광경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때때로 이유도 없이 ‘폭발’했다. 학대의 대상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나나 어머니도 여러 번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춘기에 들어서 체력적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있게 된 나는 이 부조리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나면’이라고 다짐하며 칼 한 자루를 사서 베개 밑에 숨겨 두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베개 밑으로 손을 뻗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순간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문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았다. 내 손에는 아직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에는 희미하게 아버지의 피가 묻어 있었다. 방문 밖에서는 “경찰을 불러! 저런 놈은 감방에 처넣어야 해!”라며 외치는 아버지의 격노한 음성과 “제발, 그만둬요. 앞날이 창창한 애잖아요!” 하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혈흔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검붉게 변했을 때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찾던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결론이었다.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명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나는 ‘부친을 살해한 소년 A’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극심한 허무감에 빠졌다. 슬픈데 슬퍼할 힘도 없었다. 모든 감정이 죽어 버린 것 같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벽이 밝아 올 무렵 마음이 부들부들 떨리며 갑자기 눈물이 넘쳐났다. 그리고 양손을 들고 이름도 모르는 신을 향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