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림을 그리는 태도도 단순하고 온당하다. 파격적인 형식을 구사하지도 않고,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손에 맞는 간편한 재료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신중하게 그림의 세계를 탐구할 뿐이다. 하지만 제한된 형식 속에서 그의 감성은 끝 간 데 없이 기발하고 경쾌하다. “수단이 제한될수록 표현은 강해진다”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경쾌한 것은 심오한 것이다.” 기세등등한 외양과는 달리, 독설가는 세상이 허용하는 선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얼핏 보이지 않은 영역을 드러내고, 바늘 하나 꽂기 어려운 자리에서 광활한 우주를 발견한다. 독설가는 예술가다.
이 책에 실린 어두운 스타일의 삽화처럼 『레 미제라블』에는 어둠이 잘 어울린다. 어두운 바탕 위에서 무수한 별처럼 디테일이 빛나기 때문이다. 디테일이여! 이는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다. 디테일은 수많은 주석과 언급, 갖가지 감상의 파편이다. 디테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다시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시마 시게루의 이 책은 독자를 『레 미제라블』의 디테일로 끌어들인다.
이 책은 유럽의 명화를 통해 신화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그런데 이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책은 명화들의 석연찮은, 괴상한, 때로는 유쾌한 면면을 살피면서 이들의 배후에 자리 잡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조명하고, 신화가 다른 예술적, 문화적 기제와 실타래처럼 뒤엉킨 명화들 속에서 이야기의 가닥을 능숙하게 뽑아낸다. 이 가닥을 따라 그림과 신화의 세계를 굽이굽이 돌아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 샌가 명화의 뒷면을, 신화의 이면을 엿보게 된다. - <역자의 후기> 중에서
모티프는 예술에서 창작의 동기, 동인(動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술품에 담긴 크고 작은 주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는 서양미술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제를 살핀다.
미술 속 모티프에 담긴 다채로운 의미를 살피고 있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부러 모티프에 의미를 담아서 이걸 해석하도록 했을까, 그냥 메시지를 화면이나 벽에 글로 큼직하게 써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물론 가당치 않은 생각이다. 서양에서 미술은 오랜 기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텍스트 구실을 했다.
이미지를 읽는 방법은 시간이 지나서 환경이 바뀌고, 정서와 가치관이 바뀌면서 잊힌다. 해독할 도구와 맥락이 사라져서 의미를 되살리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미야시타 기쿠로 교수처럼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는 연구자들이 있어서 독자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 역자 서문에서
저자가 ‘무서운 그림’을 다루는 중요한 수단은 ‘이야기’, 그림을 둘러싼 무서운 이야기다. ‘그림’과 ‘이야기’라는 두 가지 요소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엔 그림을 앞세우고 어떤 경우엔 이야기를 앞세우고, 때로는 둘을 번갈아 내세우고, 얼른 보기에 상관없는 다른 사건과 그림으로 경쾌하게 뻗어가기도 한다. 이번엔 저자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떤 얼개로 이야기를 엮어 갈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런 기대를 품게 된다.
위작과 도난에 대한 이야기는 미술품과 미술계가 겪은 불운에 대한 기록이지만, 미술품과 미술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장치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현대 사회의 매체에 휘둘리는 대중 속의 일인(一人)인지라 취미가 경박스럽고 신기한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러니 위작과 도난이라는 흥미로운 렌즈로 미술계를 들여다보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