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갇혀 있었던 말들을 내보낸다. 이 시들은 과묵했던 문학소년을 길러 낸 고향의 정경과 일상의 자잘한 사건 들을 내 ‘몫’의 말들로 풀어낸 무늬들이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이 만나는 민들레, 고라니, 주름을 거느린 삶 하나에도 분화구보다도 뜨겁고 죽음마저 따뜻한 체온으로 녹이는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2021년 여름이 가까운 날에
손진은
가끔 홀로 되신 어머닐 도와 하는 장작 패기는
존재의 근원에 가는 길을 가르쳐 준 것 같다.
어쩌면 노동은 '가벼운 상승의 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의지며 욕망마저도 빼 버린 도끼날의 힘
나뭇결 심장의 불꽃에 가 닿을 때, 전율처럼 일렁이는.
하여 사상(事象)들 외피만 건드려 피 흘리게 한 언어들엔 미안해진다.
하기야 이 정도 더미라도 어떻게 쌓을 수 있었겠는가.
<시론>으로 날(刀) 세우는 법 가르쳐 주시고,
지금도 흘린 코 닦아 주시는 곁의 선생님.
<하남시편>으로 온통 외지를 떠돌게 했던 분이나
송형을 비롯한 시인들.
학교와 집안 '모도 따시한' 어른들 음덕 아니라면.
드릴링 머신이나 무지하게 잘 드는 날 어디서 구해 올 수는 있으리라.
허나 그렇다고 사상의 '결'에 '서린' 그들 가슴 만날 수 있을 것인지.
타고난 날, 눈물로라도 벼리며 가리라. 날 바꿀 수야 없지 않은가.
물끄러미 지켜보시는 그분,
이사야의 부젓가락으로 내 시 입술을 지져 주실 것이다.
199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