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덫에 걸린 지가 꽤나 되었다.
허나 끌고 갈 내 짐은
별로 간절한 게 없다.
몸속에서 몸만 키운 탓일까.
비대해져 뒤뚱거리다 쉬이 넘어진다 다시 일어서려고
무릎을 몇 번씩이나 꺾는데도 맨 그 모양이다.
몸 안에 구시렁을 앉히고 보니 잡것들 투성이다.
고만고만한 것들로 짜여진 내 허물은
나를 가르치려 들질 않기에
딱딱하고 불확실한 것들만 내 편이다.
그래도 사랑한다. 내 근심과 낮게 달린 30촉의 불빛을,
크고 작은 결핍들로 짜여진 내 시를.
가을, 창을 닫으려니 맘 문이 닫힐까 봐
내- 떨고 있다.
안경 도수를 높이니 사물의 구도가 깨진다.
희미하고 우울한 것에 편들지 못해
몸이 가렵다.
겹쳐 보이는 시의 면적에 눈을 얹는다.
저녁 순정을 받아 쓴 일기 52편을 펼친다.
어둑살이 드리우니 낮은 것의 속내가 명징해진다.
나를 오래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2017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