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이 책에 박힌 ‘소설’이란 글자가 머쓱하게 다가온다. 막연히 나는 꿈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 일기를 써왔고 몇몇 꿈은 내 시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데가 있었다. 꿈을 글감으로 삼는 대신, 꿈을 꿈으로서 존중하며 이쪽 세계로 옮겨와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아직 954개의 꿈을 더 모아야 하니 목표까지는 한참 멀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건 고작 해몽전파사의 프롤로그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가게의 문을 열고 말았다. 나는 내가 쓰지 못한 이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앞으로 모일 954개의 꿈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또 진주씨의 건강과 해몽전파사의 밝은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이 책과 인연을 맺는 분들도 진주씨의 쾌유를, 설아씨와 삼월씨와 내가 천개의 꿈을 다 모으는 날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꿈을 꾸었다.
못을 뽑았다. 못함의 못을. 꿈이 아닐 수 없는 꿈으로부터.
나는 감히 나의 주인공들을 닮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닮고 싶기엔, 그들의 외로움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주인공들을 연모한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연모하고 싶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연모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나는 너무 멀었다. 다가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애의 마음이 이 책을 꾸리게 한 원천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글쎄다. 특별히 이렇다 할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의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순을 바꾸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모하고 싶지만 연모할 자신이 없다, 가 아니라, 연모할 자신이 없어도 나의 주인공들을 연모하고 싶다고. 닮고 싶지만 닮을 자신이 없다, 가 아니라, 닮을 자신이 없어도 닮고 싶다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겠다, 가 아니라, 그럴 수 없을 것이라도 그러고 싶다고.
‘그러고 싶은’ 소망보다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더 무겁다. 나는 그것을 지구의 중력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나는 지구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쓰는 문장은 다른 별의 가능성을 언제까지나 나에게 상기시켜주기를. 이 마음까지를 담기 위해, ‘그러고 싶음’과 ‘그럴 수 없음’의 자리를 바꾸기로 한다. ‘그럴 수 없음’ 위에 ‘그러고 싶음’을 힘주어 포개고, ‘그러고 싶음’ 위에,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가, 어색함을 무릅쓰고 마지막 문장을 주문(呪文)처럼 얹는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할게.
나도 나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할게. 나의 주인공들이 열어놓은 세계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이 문장을 나의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만큼만 변했다. 그리고 꼭 그만큼, 나는 예정되었던 것과는 다른 현재에 속해 있다고 해도 좋겠다.
소설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이 책에 박힌 ‘소설’이란 글자가 머쓱하게 다가온다. 막연히 나는 꿈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 일기를 써왔고 몇몇 꿈은 내 시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데가 있었다. 꿈을 글감으로 삼는 대신, 꿈을 꿈으로서 존중하며 이쪽 세계로 옮겨와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아직 954개의 꿈을 더 모아야 하니 목표까지는 한참 멀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담긴 건 고작 해몽전파사의 프롤로그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가게의 문을 열고 말았다. 나는 내가 쓰지 못한 이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앞으로 모일 954개의 꿈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또 진주씨의 건강과 해몽전파사의 밝은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진다. 이 책과 인연을 맺는 분들도 진주씨의 쾌유를, 설아씨와 삼월씨와 내가 천개의 꿈을 다 모으는 날을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꿈을 꾸었다.
못을 뽑았다. 못함의 못을. 꿈이 아닐 수 없는 꿈으로부터.
202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