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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국내저자 > 번역

이름:석영중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9년

최근작
2024년 10월 <눈 뇌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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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지루한 이야기

체호프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위대함을 추구했던 작가다. 그는 낙관과 염세 사이, 웃음과 눈물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 진지함과 시시한 것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우리 대부분의 삶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삶을 살았으며 작가의 언어로 그것을 풀어놓았다. 단순한 문체로 쓰인 이야기들은 때로 망치로 돌변해 독자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의 작품 중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은 한편도 없지만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는 소설 또한 단 한편도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돌이켜 보면 나는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그의 소설에서, 그 치열함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치열함 맨 밑바닥에 있는 삶에 대한 사랑에서 힘을 얻곤 했다.

러시아 현대시의 해석

이 세상에 오로지 한 편만 존재하는 만델슈탐의 시와 딥러닝이라는 차가운 처리 과정을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모종의 텍스트 간의 차이를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전 생애와 그가 속한 시대 전체를 담고 있는 아흐마토바의 시와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에 의존하는 저자 없는 텍스트 간의 차이 또한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만 편의 평론과 연구서를 창출한 푸시킨과 단 한 편의 평론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알고리즘 간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이 작성한 시는 인간이 쓰는 시가 왜 필요한지, 시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시를 읽을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생성형 로봇의 등장으로 디지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분석하는 방식과 접근법 역시 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야말로 변하지 않는 어떤 부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줄 것이다. 만델슈탐의 말처럼 시는 존재의 물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인을 포함하여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모든 저자와 그 글을 향유하는 모든 독자에게 읽고 쓴다는 것은 존재의 방식이다. 이 책에서 살펴본 시인들이 그 변치 않는 존재의 방식에 대한 견고한 기념비가 될 것이라 희망 한다.

러시아정교

정교 신앙의 역사적 흐름과 그 신학적 본질, 그리고 신앙의 지상적 표징인 성당과 이콘은 상호 연관되는 가운데 아름다움과 진리와 선함이 장엄하게 어우러진 삶, 러시아인들이 천 년 동안 가슴에 지녀 왔던 삶의 이상을 독자에게 보여 주고 더 나아가 정신적인 것의 가치에 관해 재고해 볼 기회를 마련해 줄 것으로 믿는다.

매핑 도스토옙스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여행도 그랬다. 그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달라졌다. 매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읽었다. 시베리아에서, 유럽에서, 광야의 수도원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삶도, 문학도 다시 태어남의 끝없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건강하게 사는가

건강한 정신, 건강한 몸 러시아의 대문호 똘스또이는 우리에게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같은 장편 소설과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교훈적인 우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똘스또이는 소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종교에 관한학문적인 글, 교훈 서적, 예술에 관한논문, 교육에 관한 글, 어린이를 위한교본 등등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그가 손대지 않은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특히 오십을 넘어서면서부터 소설보다는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글을 쓰는 데 매진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 중에서도 채식주의, 금주, 금연을 가르치기 위해 대문호가 말년에 쓴 세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똘스또이는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흡연과 음주, 및 온갖 마취성 기호식품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주장은 때로 너무 강하고 억지스럽게 들립니다. 그는 마치 육식이나 흡연이나 음주가 무슨 범죄행위라도 된다는 듯이 격렬하게 비난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읽다보면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토록 천재적인 작가가 그토록 강하게 무언가를 주장했다면 어쩌면 조금은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똘스또이의 주장은 오늘날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필자는 똘스또이의 채식주의와 금주, 금연은 웰빙, 해독, 대체의학 같은 현대의 키워드를 예고해 준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고싶습니다. 똘스또이의 에세이는 우리가 육식과 음주와 흡연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를 궁극적으로 도덕에서 찾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식과 담배와 술 같은 ‘물질’은 도덕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영역과 직결된다는 뜻입니다. 똘스또이는 정신의 건강을 몸의 건강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이점에서 그는정신과 신체의 상관성을 토대로 하는 현대의 대체의학자를 연상시킵니다. 예를 들어, <초프라 웰빙 센터>를 운영하는 저명한 미국의 대체의학자 디팩 초프라 박사는 『중독 보다 강한』, 『더 젊게 오래 사는 법』 등의 저술에서 신체와 정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양자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할 때 온갖 질병이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신체적으로건강한 삶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동일하게 바라보면서이를 위해 신선한 과일과 채소와 곡물의 섭취, 운동, 명상, 술과 담배와 모든중독성 물질의 사용 중단을 제안합니다. 초프라 박사의 제안은 거의 문자 그대로 똘스또이의 주장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니까 똘스또이의 음식, 술, 담배 등과 관련한 도덕적인 ‘설교’에 화가 나는 독자라 할지라도 그 설교가 갖는 의학적 의의는 귀담아듣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똘스또이의 주장을 관통하는 한 가지 화두는 ‘절제’입니다. 그가 채식주의를 옹호할 때도그 모든 주장의 무게가 실리는 곳은육식 자체의 중단이라기보다는 절제하는 식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배가 부른데도 먹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 밖에 없다고 하면서 탐식과 대식을 비난합니다. 오히려 고기 요리 자체 보다는 고기 요리를 포함하는 과도한 식사가 그의 비난대상이라는 얘기입니다. 초프라 박사 역시 건강한 몸과마음을 위한 식사의 첫째 조건으로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르면 그만 먹는다"를 꼽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주와 금연 역시 인간의 절제하는 삶을 위해 필요합니다. 똘스또이는 술과 담배가 사람의 마음을 흐려놓고, 지성을 마비시키고, 양심을 휘저어놓기 때문에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들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거기에 빠져 그 중독성 영향하에 노예처럼 휘말리게 되는 인간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 ‘웰빙’과 관련된 저술에서 신체와 정신을 위한 해독의 첫걸음으로 금주와 금연이 거론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편의에세이에서 똘스또이가 주장하는 바와 공감하지 않는 독자라 할지라도 그 강렬한 어조만큼은 대단히 감동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혹시라도 독자가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러는지, 한 말을 또 하고또 합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될 대목에서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체는 강렬합니다. 압도적입니다. 독자를 자극하는 그의 설교적이고 뒤얽힌 문장들은 어쩌면 노회한 천재작가의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여기 실린 세 편의 에세이는 『사람들은 왜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것일까』(1895), 『첫걸음』(1891), 『하느님이냐 재물이냐』(1895)를 번역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번안에 가깝게 고쳤으며 제목 또한조금 더 친숙하게 들리도록 바꿨습니다. 이 에세이들은 우리나라 말로는 이번에 처음 번역되는 것이지만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어 무수히 많은 채식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독자들에게 대문호의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광인의 수기

이반의 일생은, 즉 인간의 일생은 삶과의 사투이자 죽음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이반의 생물학적인 존재가 끝나는 것은 생명의 끝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끝이기도 하다. 똘스또이는 종교적인 영혼 불멸의 관념에 전혀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죽음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죽음의 집에서 보다

도대체 무엇이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이토록 매력적인 소설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마도 거장이 그리는 시베리아 유배지 감옥은 결국 우리가 사는 사회, 지금 이곳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덧 감옥 안의 세상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중첩되고 죄수복을 입은 흉악범에 나 자신의 모습이 대입된다. 그러면서 결국 삶이란 갱생을 향해 가는 중단 없는 추구의 과정이라는 도스토옙스키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머리말」에서

지루한 이야기

체호프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위대함을 추구했던 작가다. 그는 낙관과 염세 사이, 웃음과 눈물 사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 진지함과 시시한 것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우리 대부분의 삶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강인한 의지와 열정으로 삶을 살았으며 작가의 언어로 그것을 풀어놓았다. 단순한 문체로 쓰인 이야기들은 때로 망치로 돌변해 독자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그의 작품 중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은 한편도 없지만 쉽게 읽히거나 이해되는 소설 또한 단 한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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