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담쌓고 지냈고, 나이는 서른에서도 한참 후반인 데다, 허리 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는 저질 체력이고, 전셋집을 빼서 마련한 여행 자금 3500만원이 재산의 전부인 여자! 바로 2007년 당시의 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여행을 하면서 보니 내 핸디캡이 오히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혼자 다닌 까닭에 행운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여자인 까닭에 세상의 소수자에게 더 마음을 내줄 수 있었으며, 나이가 많은 까닭에 꽃 같은 나이에 여행했을 때보다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기 전 나는 하기 싫은 일과 미운 사람 투성이였고 사사건건 날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은 하고 싶은 일과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고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희망, 믿음, 미래 등 전에는 가까이하지 않던 단어들을 지금은 내가 먼저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은 무슨 일로 기쁘게 될까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미친 거 아냐?”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723일 이라는 적잖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덕분이다.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결정'을 해야만 한다. 숙소에서 행선지까지 사소한 것도 일일이 선택해야 하고 끊임없는 돌발 상황에 즉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결정도 책임도 누구에게 돌릴 수 없는 나의 몫. 그 결과는 수없는 자기환멸과 자기애의 롤러코스트였다. 그렇게 723일을 보내고 났더니, 내가 무슨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버틴 곰이라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723일간 내가 겪은 길 위에서의 절망과 기쁨과 감동을! 그래서 아쉽고 부족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감히 기대해본다. 업그레이드된 <단군신화>와 함께 탄생할 제2, 제3의 웅녀들을! 더불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녀들이 하게 될 이런 말을!
“그까이꺼 세계 여행~”
“그까이꺼 리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