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새마을운동이 1970년 4월 22일 국가의 중요시책으로 채택된 지도 50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외에 어떠한 나라도 새마을운동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정책이나 시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새마을운동도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다. 역사는 시간흐름을 통해 걸러지지만 정작 시간을 본 사람은 없다. 다만 시간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남긴 흔적은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발견된다. 오늘 보이는 흔적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내력을 포함하고 있고, 오늘 일어나는 일들은 다가오는 미래에 또 다른 흔적으로 남아 시간이 지나갔음을 알려줄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한국의 근대화를 고스란히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의 새마을운동은 한국의 미래사회 일부를 포함할 것이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오해와 편견도 풀리고, 폭발하듯 들끓던 감정도 가라앉는다. 시간이 흐르면 있던 것도 새롭게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며, 함께하던 것들도 잊히고 보이지 않는다. 크게 보이던 빈부격차, 지역격차, 사회적 격차, 문화적 갈등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뒤바뀌거나 다르게 인식되고, 혹은 작게 느껴져서 기존 관점에서라면 문제가 안 되거나, 전혀 새로운 문제로 인식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변화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은 시간흐름과 주변 공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정된 생애주기로 인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간흐름으로 걸러내고, 공간 위에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관리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고자 시도하고,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도모하여 더 좋은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인간이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희망의 근거가 되었고, 지적(知的) 호기심의 원천이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인류문명을 설명할 수 있는 인식 도구로 역사(歷史)와 지리(地理)라는 학문의 중심주제가 되었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현자(賢者)를 ‘역사에 능통하고 지리에 밝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공간은 지역마다 다양하고 서로 다르게 보이는데, 시간은 어디에서나 획일적이고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점이 저자의 호기심 원천이기도 하고,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저서는 2015년부터 3년간 대한민국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의 결과물이다(NRF-2015S1A6A4A01014357). 물론 이 저술의 시작은 2013년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의 늪’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가 양극단을 달리는 이유를 정리하고 싶었다. ‘시간흐름이 새마을운동을 변화시키는지 아니면 새마을운동이 시간을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소모적인 사유(思惟)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끌렸다. 이러한 호기심으로 저자는 가끔 깨달음의 희열을, 그리고 종종 인식의 한계와 무지의 절망감에 빠져 7년여를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시간이 흘러도 사실관계는 변하지 않아야 될 것 같은데,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이 저술의 목적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저간의 오해와 편견을 풀어보자는 것이었지만, 원고를 쓰면서 저자의 호기심은 ‘사회변화’와 ‘인류 집단의 진화’로 옮겨 갔다. 이러한 호기심의 전환이 오히려 이 책의 처음 의도를 더 잘 실현하리라고 기대해본다. 국제사회가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주목하면서 새마을운동을 수식하는 단어도 다양해졌다. ‘아직도 새마을운동?’이라든가 ‘그들의 새마을운동’ 혹은 ‘우리의 새마을운동’, 또는 ‘지구촌 새마을운동’과 같은 표현처럼 새마을운동의 시간범위와 공간범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고 다양하다. 시간은 사물이나 사건의 존재범위를 표현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지, 사물이나 사건 자체는 아니다. 시간흐름으로 인식의 틀이 바뀌면 사물이나 사건이 달리 해석될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현재의 인식도구로 과거에 존재했거나 일어났던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거나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 상황을 예견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결국 저자의 지적 호기심은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으로 모아졌다.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어느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 창조물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특정한 종(種, species)은 시간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더라도 동일체를 검증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이제까지 인간생활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시간좌표와 공간좌표를 결합하고 인류문명의 발전현상을 이어온 유전자를 탐색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이러한 발전현상의 사례로 1970년 한국에서 국정과제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을 다룬다. 이 저술의 처음 의도가 바뀐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본래 의도로 회귀한 셈이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2020년에 맞춰 출간하게 된 이유는 ‘새마을운동’ 반세기를 돌아보고 싶은 저자의 속마음에서다. 반세기는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정책의 진화과정을 검토하기에 필요한 최소 시간흐름이다.
새마을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함께 여러 나라에서 실시된 다양한 전후복구사업, 특히 지역사회개발사업 경험으로부터 실패요인과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성공할 수 있는 유전자를 찾아 결합하면서 진화한 지역사회개발정책이다. 국제연합(UN)은 1960년대를 ‘개발연대’로 선포하였다. 새마을운동이 우리만의 독창적인 지역사회개발 접근논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국제사회에서 새마을운동처럼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 지역사회개발 정책사례는 없다. 이러한 사실이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이 다른 유형의 지역사회개발 방식과는 차별화된 우성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근거다.
인류문명의 발전현상을 설명하는 유전자는 생물진화론에서 일종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과정처럼, 인간의 생활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인간사회를 진화시키고 있다. 즉, 새마을운동은 환경변화, 주민생활의 일상생활 관련 수요변화에 대응하면서 대한민국을 발전시켰다. 한국의 발전은 종종 세계인들로부터 기적(奇蹟)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그러한 발전을 일궈낸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에 도전하면서 얻어낸 노력의 결과였다. 기적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노력은 누구라도 따라할 수 있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실천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지난 50년 모든 대한민국 국민, 특히 새마을지도자들께서 일궈낸 지역사회발전과 나라발전의 실천과정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이 책을 쓰면서 표현이 항상 사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함을 깨달았다.
이 책은 모두 세 편(Ⅰ, Ⅱ, Ⅲ)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편은 인류문명의 진화과정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논거와 이론탐색에 관한 6개 장(Chap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Ⅰ편의 핵심용어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개인의 덕목인 자유와 집단의 덕목인 평등, 인류문명의 발전, 변화와 진화의 차이, 시간함수와 공간함수, 국가발전과 지역발전, 공동체인식과 공동가치, 그리고 발전을 향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등이다. 이들 핵심용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사회에 남긴 굵직한 흔적에서 추출한 알갱이에 속한다. 이들 핵심용어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우리 사회는 편을 가르고, 갈등을 겪고 있다. 아마도 새마을운동은 이러한 핵심용어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다양한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공동체 인식이 인류문명의 진화를 주도하는 유전자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책은 진화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한다. 진화의 맥락은 존재의 영역과 가능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모든 존재의 진화를 그들이 타고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으로 접근한다. 존재에 대한 가치판단은 결과론적인 해석이라서 과정 중심의 진화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인식 ‘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사회와 집단 구성원들의 ‘주도권(initiatives)’ 및 ‘주인의식(ownership)’이 해당 사회 혹은 집단의 ‘공동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심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던 농촌빈곤퇴치 혹은 지역사회개발 관련 정책들과 새마을운동을 비교함으로써 더욱 공고해졌다. 즉,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주민들의 ‘주도권’과 ‘주인의식’을 촉발하여 마을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는데 기여하였고, 다른 나라 지역사회개발정책들은 그렇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아무리 좋은 청사진도 실천 없이는 실현되지 않는다. 이러한 실천과정은 개별 구성원들의 ‘주도권’과 ‘주인의식’을 통해 만들어지고, 집단의 공동체 가치를 형성한다. 결국 지역사회발전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주도권’과 ‘주인의식’이 공동의 ‘문제’와 ‘목표’를 연결하고, ‘마을 공동체’가 진화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한 셈이다.
물론 제Ⅰ편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용어들도 나름대로 긴 세월을 버텨온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인간생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표현하는 모든 유전자를 찾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면서 또 다른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거칠지만 담대한 용기를 얻는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인류사회가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제Ⅰ편의 내용은 그러한 큰 줄기를 이루는 일부 세포에 불과할 것이다. 인류문명의 진화과정에서 또 다른 일부의 줄기세포는 저자의 남은 인생, 혹은 다른 동료 학자들의 지적 호기심과 같이 하리라 믿는다. 인류사회의 줄기세포가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전자의 탐색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길고 방대한 지적향연(知的饗宴)이 될 것이다.
인류문명은 시간흐름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공간변화를 통해 시간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즉, 인류문명은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결과물이고,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는 근거이다.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은 개인적인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공동체 집단생활에도 적용된다. 이 책에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사례로 1970년 ‘다 함께 잘 살아보세’라는 기치로 출발한 새마을운동을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발전정책 혹은 개발정책은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조작하는 과정으로 접근된다.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시간흐름을 ‘발전현상’에 대한 설명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공간현상’으로 치환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운동이 ‘발전’을 지향하는 지역사회개발 접근방식이라는 점에서 ‘발전’개념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발전’의 개념이 다르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마을 공동체 집단의 번영을 같은 방향으로 결합한 실천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그동안 인류문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시간함수 및 공간함수를 다시 검토하고 발전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통합적인 시?공간 좌표를 모색한다. 이러한 시?공간 좌표는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현상에 접목한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 맥락에서 출발한다.
사회진화론은 비교를 통해 다양한 공간현상이 각각의 상황에서 우성인자를 인지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공간좌표의 범위를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그로부터 당장의 편익을 우선하는 현 세대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개발 사업은 다음세대에 부담으로 남는다. 그러나 시간좌표와 공간좌표를 확장한 사회진화론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다음 세대에 큰 부담을 전가하는 거대한 개발 사업은 시기, 규모,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 확장된 공간좌표는 사회적 할인율(SRD, Social Rate of Discount) 결정과 관련하여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생물진화의 경험을 고스란히 사회진화론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물진화 과정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경험적 교훈과 이를 근거로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변화와 관련한 편익과 비용을 현재 세대에게 인식시켜 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 생물진화가 종(種)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행된다면 사회진화는 시대별 다양한 세대의 존재균형과 공간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는 상황균형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변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주변상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Ⅱ편은 제Ⅰ편에서 탐색된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접근논리와 지역사회 발전현상에 대한 패러다임에 근거하여 한국의 새마을운동 성과를 평가한다. 새마을운동의 성과에 관한 다양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회진화의 우성인자(優性因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접근논리는 새마을운동의 긍정적 성과에 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마을운동이 50년 지속될 수 있었던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현상의 진화배경과 과정에는 결국 치유되고 도태된, 어둡고 그늘진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배경과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현재의 모습은 그것대로 타당한 존재이유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존재이유는 우성인자 때문이지 열성인자(劣性因子) 때문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열성인자가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열성인자도 우성인자에 의해 형성, 유지되고 있는 큰 줄기를 정의하고 설명할 때 유용한 보조수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Ⅱ편 제1장은 새마을운동이 국정과제로 채택될 시점을 전?후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을 검토한다. 새마을운동을 전?후한 시대환경의 검토는 이후 새마을운동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상황인식에 도움이 된다. 제2장은 우선 새마을운동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검토하고, 새마을운동의 태동과 추진체계를 살펴본다. 한국 전통적인 계(?)모임, 두레, 향약(鄕約)과 1950년대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추진되었던 지역사회개발정책의 경험, 1962년 1월 시작된 전라북도의 ‘보고 가는 마을운동’이나 1962년 3월 시작된 경남의 ‘새마을 건설운동’은 1970년 국정과제로 채택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모양은 달라도 같은 방식의 삶을 이어오고 있음에 놀랐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많은 나라에서 명칭과 겉포장만 다를 뿐 의도나 내용이 유사한 한국의 계모임이나 두레 같은 삶의 방식이 발견된다. 저자는 다양한 인류사회의 ‘공통점’을 ‘공동체 인식’에서 찾고자 한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주민들의 일상생활 무대인 마을을 기본단위로 ‘공동체 인식’을 회복하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공동체는 구성원 모두가 협력하지 않으면 형성되기 어렵고(협동정신), 구성원 각자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근면정신). 특히 공동체의 건강은 구성원 스스로의 노력정도에 달려있다(자조정신). 새마을운동이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촉발하는데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주민들의 공동체 인식을 형성, 강화, 유지하여 마을 주민들의 공유지분(commons)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늘어난 마을의 공유지분은 주민들의 공동체 인식을 강화하는 순환 누적적 인과율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의 진화과정은 공동체 인식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이 책에서 ‘공동체’를 어느 사회 혹은 집단의 유전자로 정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그때까지의 다양한 지역사회개발분야 경험을 통해 배양된 ‘공동체’라는 유전자 중에서 주민들의 ‘절실함(felt-wants, 혹은 felt-needs)’이나 상황(당시의 환경)에 맞는 적정한 접근수단을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s)’ 방식으로 조합하여 ‘새마을 가꾸기’를 제안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오랜 전통인 ‘두레’니, 1962년 경남의 ‘새마을 건설운동’과 전북의 ‘보고 가는 마을운동’ 등은 1970년 국정과제로 채택된 ‘새마을 가꾸기’의 모태이고, ‘새마을운동’으로 진화하는 시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다양한 지역사회개발 경험에서 특정 유전자를 선택하는 과정은 창조의 관점보다는 진화의 관점에서 보다 잘 설명된다. 당시의 공간과 시대의 상황인식이 없었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새마을 가꾸기’를 제안하지 못했거나 안했을 것이다. 모든 정책은 주어진 여건과 문제에 대한 대응이지, 과거와 현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은 고려의 대상이지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존재가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세대가 지난 과거를 부정하거나 탓하기만 한다면 다가올 미래를 책임질 수 없고, 미래 시점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미래 인정받지 못할 일을 추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도시와 농촌의 격차 및 전통산업(농업)과 근대산업의 부문격차와 관련한 갈등문제를 해결하고 상황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주민역량을 강화하는 성과를 거둔 것도 진화의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사업’으로 추진한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국가 혹은 지역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여건에 대한 공동체의 반응(responses)이었다. 이러한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은 주민들에게 지역사회발전에 대한 ‘주도권’과 ‘주인의식’을 돌려주었고, 마을 공동체가 진화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새마을운동의 진화를 통해 20세기 후반 한국사회는 효율화되고 주민들의 기초생활권인 마을 단위부터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지나왔고, 남들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따르고 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서 지나 온 길이 있었기에 나아갈 길이 보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국제연합 등 국제사회가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을 빈곤퇴치와 지역사회개발 ‘우수 사례(best practice)’로 선언하고 있음도 새마을운동 진화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2013년 새마을운동에 관한 22,084개의 문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 방대한 문건이 한국의 빈곤탈출과정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어서 모든 인류가 공유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새마을운동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하다는 증거다.
이와 같이 새마을운동 작동체계는 시간을 공간으로 또는 공간을 시간으로 변환시킨 기제(機制, apparatus)로서 적극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또 소극적으로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은 다양한 지역사회개발 혹은 농촌개발 경험에서 ‘우성’으로 평가받은 유전자를 선택하고, 당시의 한국적 상황과 그러한 상황에 대한 주민들의 문제인식 및 대응능력에 따라 진화한 절묘한 ‘우량품종’이었다. 어느 특정 시점에서의 새마을운동 접근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결국 ‘우량품종’을 이어갈 수 있는 유전자의 작동을 부정하는 오류에 빠진다. 또한 ‘새마을운동’을 창조적 관점에서 접근하다보면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상황변화에 적응해온 새마을운동의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설명할 수 없다.
제Ⅱ편은 이 책이 처음 의도했던 내용으로 이제까지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제Ⅰ편에서 검토한 접근논리에 근거하여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특히 이 책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과는 지역사회 협치(거버넌스) 구축, 사회적 자본 축적 및 이의 활용, 지속가능성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재해석된다. 협치, 사회적 자본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연결고리 구축은 모두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인식과 관련한 성과지표에 속한다. 이러한 성과는 결국 새마을운동이 시대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었던 유전자에 의해 설명된다. 물론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각종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은 새마을운동이 전파, 확산되는 과정에서 결국 도태되고, 퇴화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새마을운동 추진과정에서의 사소한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전반적인 새마을운동 성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이 책이 마을 주민들의 기록과 새마을운동의 정책추진 혹은 일선 현장에 관여했던 고위 당국자 및 전문가들과의 면담자료를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다.
제Ⅲ편은 새마을운동 진화의 시?공간 좌표에 관한 내용으로 초창기부터 새마을운동에 관여한 분들과의 면담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즉, 새마을운동이 1970년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정부, 학계 및 공장새마을운동 등 관련 분야에서 책임자로 있었거나 실천업무를 담당했던 분들과의 면담내용은 새마을운동이 시대에 적응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또한 국제기구에서 새마을운동을 ‘우수 사례’로 채택한 분, 그리고 지구촌 현지에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고 관찰한 분들과의 면담내용은 새마을운동이 지구촌으로 확산되어 현지에 맞게 진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간 새마을운동은 탄생배경과 추진과정에서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인해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거나, 과거의 사실관계를 당시의 거대한 시대상황에서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관점에서 마름질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또한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상당부분은 새마을운동의 진화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새마을운동의 전반적인 성격과 실천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의 미비에서 비롯된다.
이 책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사실관계를 애써 외면하려는 정치적 성향과 사회진화에 대한 인식근거의 미비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 책은 새마을운동 자체에서 정치적 색깔을 빼고, 사회진화에 대한 관점을 탐색하며,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오해와 편견의 상당 부분은 이제까지 외면했던 실증자료를 검토하고 보완하면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 책이 사회변화를 측정하는 도구의 탐색에 큰 비중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사회변화에 대한 관점이 큰 차이를 보이는 원인으로 권력과 자본,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의 속성을 지목한다.
권력과 자본,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은 이를 가진 자에게 아부하도록 설계되었다. 권력과 자본 등은 인류사회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러한 수단이 목적으로 설정되면 사회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사회를 왜곡한다. 즉, 권력이 권력을, 자본이 자본을, 지식이 지식을, 정보가 정보를, 기술이 기술을 단순 확대재생산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면 사회는 탄력성을 잃고 결국 한 쪽 방향으로 쏠려서 아집과 편견이 판을 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권력과 자본,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은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사용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없는 권력, 나 혼자만의 자본과 지식은 세상을 가두어 이를 가진 사람들의 존재이유까지 삼켜버린다. 따라서 이를 가진 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남다른 균형감과 다양하고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포용심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자본, 지식과 정보, 기술은 활용가치를 잃고 지속될 수 없다. 저자는 상대방을 인정 혹은 배려하지 못하는 권력과 자본,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의 횡포가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원인임을 이 책에 담고자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원칙을 무시한 입장이 난무하고, 이 편, 저 편에 따라 입장이 갈라지는 사회를 경계하고자 한다. 즉, 편 가르기가 우선하여 편에 따라 입장이 다르고, 입장에 따라 원칙이 달라지는 사회는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가 없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상당 부분 이러한 편 가르기 방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하는 원칙에 근거하여 입장이 표현되고, 입장에 따라 편이 형성되는 사회가 건강하다. 편 가르기가 입장이나 원칙에 우선한다면 강력한 편으로 몰리는 모리배가 많아지고 일단 어느 편에 속하면 소속 편에 반하는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되면 진실은 왜곡되고, 허위가 판을 바꾸면서 결국 모든 ‘편’이 썩게 된다. 원칙이 통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다양성을 조화로 이끌지 못하고, 사회를 갈등의 늪으로 빠뜨린다.
남과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사회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사회가 썩으면 탄력성을 잃어 정의도 세울 수 없고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이 책이 사회발전을 바라보는 원칙과 접근논리를 탐색하는 부분에 큰 비중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가면을 쓴 진영논리는 사회를 멸망으로 유도하는 전염병과도 같다. 저자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상당부분 그간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 관행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이 어느 한 편에 치우쳐 휩쓸렸다면 이미 사라졌거나 오늘날처럼 지구촌 여러 나라의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술과 관련하여 필자는 이제까지 새마을운동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연구하는데 기여한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 저술을 가능케 한 분들은 우선 새마을운동을 현장에서 실천한 새마을지도자 및 우리 국민들이다. 이 책은 한국의 발전을 이끈 모든 국민과 새마을지도자들께서 한 일을 기록하고 해석한 것이지 저자의 창작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은 저자의 표현 미숙함 때문이지 국민과 지도자들이 실천해온 새마을운동 때문이 아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다양한 연구논문을 시?공간 상호작용 관점에서 보완한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인용된 필자의 논문들은 제Ⅰ편 논의에서 도출한 접근 틀을 통해 재해석되고, 진화의 관점에서 보완되었다. 2016년 3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저자가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만난 국내, 해외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의 맥락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제까지 새마을운동에 기여한 분들과의 면담내용은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다.
이 책이 담고자하는 의미도 향후 시간함수와 공간함수의 변화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이 책은 이 시대 새마을운동의 진화과정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이 미래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사회가 새마을운동 접근방식을 어떻게 변형 혹은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2020년 4월 더헤리티지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