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이름:고정희

본명:고성애

성별:여성

출생:1948년, 전남 해남

사망:1991년

직업:시인

최근작
2023년 8월 <초혼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시를 쓴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비로소 나를 성취해가는 실존의 획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을 실현하는 장이며 내가 보는 것을 밝히는 방이며 내가 바라는 것을 일구는 땅이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리고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선 내 실존 자체의 가장 고상한 모습이다. 따라서 내가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작업은 내 삶을 휘어잡는 핵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종의 멍에이며 고통이며 눈물겨운 황홀이다. 나의 최선이며 부름에의 응답이다. 나는 시를 쓰는 일이 여기가 될 수 있는 부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시 쓰는 일을 통해서 누구에게나 선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못 가진 자신이 내내 가슴 아프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진실이 다 편한 것은 아니며 확실한 것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너그러움이 다 사랑은 아니며 아픔이 다 절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내 실존의 겨냥은 최소한의 출구와 최소한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이 첫 시집을 마무리하면서 긴장된 마음으로 또하나의 외로움과 멍에를 감내한다. 아직은 내가 너무 젊다는 이유만으로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를 갖는다. 지난 몇 년간 쓴 작품들을 편의상 4부로 나누었다. 1부는 근작이며, 2부는 78년에, 3부는 77년에, 4부는 데뷔 전후에 쓴 작품들을 선한 것이다. 끝으로 이 시집을 엮어내는 데 격려와 힘을 주신 최정희님, 운수자님, 김정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지켜주신 부모님과 수유리 캠퍼스의 스승님들 그리고 나의 미루에게 이 작은 정성을 삼가 바친다. 1979년 7월 무등산 기슭에서

이 시대의 아벨

시집 초판 뒤표지 글(시인의 글, 1983) 시 쓰는 행위가 곧 신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와 행동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구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의 시가 관심하는 문제는 삶 자체이지 결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우리의 삶의 영역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전통의 문제들이 곧 우리 삶의 현장이며 그것들과 내 삶이 부딪는 장소에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나의 시는 그러한 삶의 현장에서의 고뇌의 궤적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정치가도 사회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지만 개개인의 삶이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들의 규제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한 제도적 억압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힘, 그것이 자유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시는 항상 자유의지에 속해 있는 하나의 에너지였다. 시집 초판 시인의 말(1983) 두번째 시집 『실락원 기행』(1981) 이후에 발표된 2, 3년 동안의 작품을 제5부로 묶었다. 올해 5월에 상재한 장시집 『초혼제』가 그 1부에 속한다면 이 시집은 제2부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1년에 두 권의 시집을 묶는다는 사실이 외형적으로 내게 상당한 부담이 되어왔지만 그러나 기왕에 정리된 작품들을 단지 출판일을 늦추기 위해서 갈무리해두는 것은 나로서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허물은 제때에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다 견고한 자기 점검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자숙하고 싶다. 1983년 9월 20일

초혼제

시력 8년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창작과 발표를 병행한 것은 1978년 이후이니 독자와 나의 진정한 만남은 불과 4, 5년을 밑돈다. 그동안의 창작 생활에서 나를 한시도 떠나본 적이 없는 것은 ‘극복’과 ‘비전’이라는 문제였다. 내용적으로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 어두운 정황을 극복해야 된다고 믿는 한편 조직 사회 속에서의 인간성 회복의 문제가 크나큰 부담으로 따라다녔고, 형식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적 가락을 여하이 오늘에 새롭게 접목시키느냐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나는 우리 가락의 우수성을 한 유산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사람 돌아오는 난장판」 「환인제」 같은 마당굿 시이고 「우리들의 순장」은 1979년에 발간된 첫 시집에서 「짜라투스트라」라는 서구적 제목으로 씌어졌던 시대 인식을 다시 한국적인 언어와 풍습 속에 재조명해봤다. 그리고 「화육제별사」는 대학 4년 동안 고난 주간과 축제 기간만 돌아오면 홍역처럼 우리를 따라다녔던 젊은 날의 고민과 갈등과 신념을 그리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그 시절에서 해방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번 시집의 원고를 마무리하고서 내심 크게 놀란 것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내 내면이 무의식이든 의식이든 ‘희망’과 ‘죽음 인식’이라는 대립관계 속에 깊이 침잠해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죽어 있는 삶’과 ‘살아 있는 죽음’에 대해 많은 콤플렉스를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너에게 죽음을 선언하고 저주를 선언하는 때에조차도 그 속에서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념과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나는 더욱더 전폭적으로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갈망하기를 꿈꾸며 또한 울울창창 우거진 내 나라의 산천과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안익태의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그날을 기원하는 자세로 오늘을 걸어가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촌티를 벗어던진 깊이 있는 정신과 더불어 오늘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 광활한 광맥에 이르고 싶다. 한편 시집을 묶을 때마다 느끼는 곤혹감이지만 독자들에게 이쁘고 편한 시, 싱싱하고 아름다운 시를 선물하지 못해서 몇 번이고 가슴이 아프다. 서로 편하고 유쾌하게 악수하지 못하면서도 시간이 다할 때까지 함께 어울려야 하는 합석 속의 껄끄러움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 독자에게 그런 인내를 강요하는 『초혼제』가 아닌지 두렵다. 1983년 5월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