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문학의 장에서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이 끊임없이 재발하고 그때마다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수차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필히 뒤따라야 하는 작업은 항시 뒤로 미루어지거나 생략되어 왔던 것이 통례였다.
그 작업이란 물론 한국 모더니즘 자체에 대한 성실하고 치밀한 탐구와 역사적인 이해다. 그럼으로써 20세기 한국 모더니즘(소설)에 대한 이해는 일방적인 징치(懲治)가 아니면 자명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의 논리에 의해 가로막혀 왔던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책의 단초가 된 처음의 문제의식은 이런 상황에 대한 이론적.학문적 차원에서의 개입이 긴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 문학-증상이란 이 불행한 시대가 애써 떨쳐버리려 해도 떨칠 수 없는, 죽어도 죽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아가 죽은것 이상이자 동시에 산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쉽지 않은 꿈을 포기하는 문학은, 미래가 없다.
생각건대 비평이 할 일 중 하나는 밑바닥에서 웅성거리는 그 유령의 목소리들을 세심히 따라 읽고 그에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며 그것의 공과(功過)를 따져 헤아리는 것이다. 비평이 끊임없이 작품의 안과 밖을 오가며 작품에 대한 공감과 비판적 의미화의 교대를 거듭해야 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