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진실된 길을 가는 이들을 찾아 방랑하다가 만난 노인이 있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지하철 속에서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하는 분이었습니다. 맨발에 이상한 문구를 새겨 넣은 모자며 옷차림, 성경 내용과 독립투사들의 사상을 뒤섞은 그 분의 외침은 기이함 그 자체였습니다. 할아버지를 사람들은 당연히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망령 든 노인네 또는 광신도쯤으로 여겨지던 할아버지를 호기심으로 만나기 시작했지만 가까이 갈수록 그 자상함과 독특한 철학에 끌리는 것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 분 속에는 아주 소중하고 귀한 그 무엇이 가득했습니다. 최춘선 할아버지는 하늘이 자신에게 깨닫게 해준 그 길을 모두가 무시하고 외면해도 충성되게 지키며 살아간 분입니다.
진정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갈 수 있는 그 외로운 길을 주께서 홀로 가셨듯 그렇게 가신 아름다운 분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마음의 위선과 편견의 껍질을 벗고 점차 가난한 영혼이 되면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여정의 기록입니다.
마음의 위선과 편견의 껍질을 벗고
가난한 영혼이 되어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거룩한 여정의 기록!
세파에 지친 사람들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에서
구부정하고 작은 몸으로,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서
맨발로 다니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30년이 넘게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그 맨발은
사람들의 비웃음 어린 시선에도 당당했습니다.
광기(狂氣)라고 하기엔 너무나 위엄 있고 힘찬
이 노인을 어쩌면 당신도 만났을지 모릅니다.
맨발 뒤에 감춰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
'부흥의 불길이 다 사위어버린 잿더미에서 혹 오늘 우리의 부흥의 불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부흥의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 길은 급하고 강한 성령의 불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경로를 탐사 순례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하늘 불길의 발화점인 웨일즈로, 그 불길이 번진 미국 아주사로, 캐나다로, 중국 심양으로, 몽골로, 북한의 평양으로 향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불길은 '하나님의 동일한 영적 신경센터'의 면밀한 작동 가운데서 땅 끝을 향하여 번져갔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다 사위어버린 잿더미에서 혹 오늘 우리의 부흥의 불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부흥의 여정에 올랐습니다. 이 길은 급하고 강한 성령의 불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경로를 탐사 순례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하늘 불길의 발화점인 웨일즈로, 그 불길이 번진 미국 아주사로, 캐나다로, 중국 심양으로, 몽골로, 북한의 평양으로 향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불길은 '하나님의 동일한 영적 신경센터'의 면밀한 작동 가운데서 땅 끝을 향하여 번져갔습니다.
이 글 속에 나오는 몇 사람들은 세상 모든 '애통하는 자'들의 상징일 뿐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헌신과 수고라도 하늘은 명확히 기억하시고 뜨거운 동행을 하시며 비록 세상에 드러난 결실이 작아 보이고 초라해 보인다 해도 그렇게 드려진 진실만으로도 이미 열매로 인정하시고 또 당신의 '때'에 반드시 결실하신다는 그 위로의 본질을 몇 사람들을 통해 나누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하늘이 주시는 '애통하는 자'의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아무리 폭풍우와 험난한 장애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아도'하나님의 풍경'을 만나고 '천국의 본질'을 소유할 때까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땅 끝'에서 울며 씨를 뿌리며 가야만 합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이 그렇게 가셨으며 또 지금도 우리와 함께 그렇게 가시길 소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애통'이며 '위로'며 진정한 '부흥'이기에.
하늘 문을 향한 여정에서
이 글은 성령님을 체험한 후 인터넷에 일기처럼 기록한 내 삶의 편린들이다.
그래서 거칠고 현실적이며 반복적인 강조들로 가득하다.
이 작은 나눔이 ‘빌립 집사’처럼 살고자 하는 모든 평범한 성도들에게
작은 용기와 손잡아 이끄는 힘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글에도 썼듯이 나는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짜릿하고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고백이다.
그러나 ‘망하는 자들’은 천국 여행과 그 추구를 가리고
우리가 온통 ‘나’에 얽매여 살게 한다.
그것은 나에게 거룩한 분노를 일으킨다.
나는 주님이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교회’를 믿는다.
그것을 꿈꾼다.
그 ‘몸 된 교회’, 주님과 동거하고 사역하는 능력의 손과 발들….
그 충일한 회복을 갈망하며 이 글들을 엮었다.
나의 부족한 안목으로는 예수님의 길을 다 만질 수도 살필 수도 없다.
그러나 ‘구하고 두드리고 찾고 찾으면’
결국 주님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그 아름다운 형상으로 옷 입을 은총이 언젠가는 임하리라 믿는다.
그렇게 가고 또 가는 것이다.
주께서 그렇게 가셨듯이….
이 세상 어느 한 모퉁이에서 나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자취를 닮아 살고자 하는 작은 다짐이 일어난다면
그것으로 이 글을 나누는 의미가 충분할 것 같다.
그 길 위에 선, 그 길을 꿈꾸는,
모든 ‘그리스도의 작은 꽃송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