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아름다운 진뫼마을에서 태어났음을 부모님께 감사 드린다. 누가 내게 행복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나는 거침없이 '고향 집 안방부터 고향마을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대답하겠다. 발길 닿는 곳마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옛 추억과 행복이 숨어있으니 그 숨겨진 보따리를 찾으러 어찌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쓴 글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겪었을 이야기들이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고향마을이 내 머리 속에서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기에 폐가로 방치된 고향집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 깨복쟁이 친구들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부모 형제가 눈 앞에 아른거릴 때마다 썼던 글들이다. (2004년 8월 27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
산은 여전히 푸르고 새들은 여전히 울어댄다. 하지만 함께 부대끼며 흙과 나뒹굴던 이웃들이 떠나간 마을은 적막하기만 하다.
섬진강 상류 산골짝 강변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연이 안겨주는 풍요로움이 있었기에 나의 유년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품어 안으며 사람답게 살았던 삶을 나는 자연스레 보고 배웠다.
손발이 소가죽처럼 단단해지도록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부모님 세대와 선대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새긴 채 오늘을 살아간다. 그분들의 고난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겠는가.
이 시집에 쓰인 언어들은 가능한 한 나의 고향 마을에서 통용되는 말을 그대로 썼다. ‘촌스럽다’고 흔히 폄하되기 일쑤인 시골말 속에 담긴 삶의 생생함과 진정성을 같이 나누고픈 마음이다. 내겐 고향 말이 변방의 사투리가 아니다. 어머니의 말이자, 일상의 표준어이다.
지금 내가 그래도 뭔가 쓸 만한 놈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순전히 고향의 강과 산, 고향 사람들의 삶에 빚진 결과일 것이다. 고마움 사무쳐 절한다. 나를 키워준 아름다운 고향 산천과 순정한 사람들에게.
아침 등굣길이면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빛나던 이슬방울들이 ‘친구야 반갑다!’ 하며 바짓가랑이 흥건히 적셔 주던 강변 오솔길. 산을 넘어온 여학생 친구들이 교문에 들어서며 달라붙은 풀잎 탈탈 털다 눈이 마주쳐 환하게 웃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봄이면 종달새, 뻐꾸기 계속 따라오며 노래 불러 주던 등·하굣길의 ‘용쏘 강변길’ 잊히질 않아 가끔 걸어 봅니다. 종달새, 뻐꾸기 소리 들으며 걷노라면 마음이 포근해지며 아무 걱정 없는 행복한 순간이 찾아듭니다.
돌이켜 보니 산골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 참 많이 받고 살았네요. 여러분도 가능한 한 친구들과 어울려 많은 추억을 쌓고,자연과 자주 벗하며 지내 보세요. 추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힘들고 지칠 때 떠올려 보면 큰 위로와 힘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