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처럼 흩어져 계신 스승들과
풀씨처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위아래 벗들,
여전히 애잔한 눈빛을 보내는 가족으로부터 나온 이것들을
다시 그들에게 돌려보낸다.
어떤 이는 공원을 감옥처럼 여기며 살고
어떤 이는 감옥을 공원처럼 여기고 살고 있으니,
세상엔 안과 밖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놓인 욕망의 철창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욕망이 나를 그립게 하였으므로, 이것들은 거기에 가서 죽어야 하리라.
시작하기로 했다. 해지고 버려져 더는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 그러나 유효하지 않다면 그것은 시의 일. 해지고 버려진 것이라면 그것은 시의 말. 우리는 밤을 향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다. 밤이 미지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미지는 없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선배들의 그것처럼 왜 우리의 이야기는 자랑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무효하다 말하며 서둘러 그 일들을 부정해온 것일까. 이런 질문이 시작되자 그곳의 나에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미안해졌다. 그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떤 미지가 기원의 어두운 밤과 닿아 있는 이유는.
―에세이 「하나의 산과 인공호수 그리고 거창」 중에서
그사이, 추억은 세간을 버렸고 꿈은 두번째 이사를 했다. 다시는 가닿을 수 없는 곳. 언젠가는 밤새 건너야 할 그 여백이 나를 온통 채울 것이므로, 대를 쪼개 뗏목을 짓듯 지나간 주소를 적어둔다.
아픔을 잃었을 때가 정작 마음이 병든 때라는 것을 말기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더는 무엇에도 울지 않는 몸에 사랑은 왕진하듯 다녀갔다. 그때마다 하늘의 환한 구멍이 까맣게 새들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늘 머물 곳이 마땅찮았던 노모 슬픔에 못 하나 파고 싶다. 그 위에 떠다니는 밤들. 슬픔이 하얀 독처럼 온전히 슬픔으로만 깊어지기를, 거울 속에서도 얼굴을 찾지 못해 바람은 마음을 절며 다녔다.
나는 이제 열 개를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열 개의 끝에는 문지기처럼 사랑이 서 있다는 것. 그건 하나를 알았을 때도 그 하나의 끝에 서 있던 것.
구름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해도 내가 꺼내올 것은 젖은 손바닥뿐,
비는 떨어질 때만 존재한다. 너그러운 저녁이 와 너를 만났다 해도 결국 혼자 돌아와야 하는 밤처럼.
비를 보면 하나 더 알게 된다.
인간에게 사랑하라 말해놓고 모든 사랑을 슬픔 속에 빠뜨린 자가 아침을 만들었다는 것.
2021년 8월
신용목
매번 나를 닦고 지나가는 시간의 방에서 쓴다. 그래서
오랜 뒤 이 방을 꽉 짜면,
나는 몇 방울 얼룩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 얼룩 속에
간신히 첫 문장이 남는다면……
내 사랑의 시작, 열아홉의 맹세들에게.
혹은
밤과 우기와 슬픔의 풀숲에서 여전히 푸른 벗들에게.
혹은
세미콜론으로 이어지는 내 이유의 주인들,
그리움은 거기 있어서
너에게, 다시 너에게.
무엇보다도
나조차도 견디기 힘든 나를 견뎌준 이신주에게,
라는 문장이…… 그리고
나머지 문장들은 이 시집 속에 있을 것이다.
2024년 7월
신용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