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아파트 올라오는 길가의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던 벚꽃이 꽃샘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너울너울 춤추며 내려왔습니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꽃잎으로 하얀 꽃길이 되었습니다.
네 살 아기 송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나들이를 갑니다.
송이는 휘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보더니,
“엄마! 눈, 눈, 눈 온다!”
엄마 얼굴을 올려다보며 소리칩니다.
“아가야, 이건 눈이 아니란다. 꽃잎이야.”
“아니야, 눈이야. 저 봐, 눈이 모여 있네.”
송이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소복이 쌓인 꽃잎 쪽으로 갑니다. 두 손으로 꽃잎을 뭉쳐 봅니다. 꽃잎은 송이 손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차지도 않고 뭉쳐지지도 않는 꽃잎.
‘그래, 이건 눈이 아니구나.’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에게로 왔습니다.
“송이야, 엄마 말이 맞지?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이 꽃잎은 저 봐,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꽃잎이 죽은 거야? 아, 불쌍해.”
“내년 봄에 다시 꽃이 핀단다. 그때 다시 보는 거야.”
송이는 금세 울상을 지었습니다. 두 손으로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고 허둥댑니다. 하지만 꽃잎은 약 올리듯 멀리멀리 도망갑니다.
“꽃들아, 안녕, 안녕, 울지 마, 내년에 꼭 만나!”
송이는 두 손을 흔들며 벚꽃에게 인사합니다.
송이는 어리지만 마음이 호수처럼 맑고 깊어요. 의심나는 건 꼭 물어서 확인해 봅니다. 하루는 송이가 아파트 정원에 활짝 핀 천리향에 코를 묻고 있었어요.
“네 이름이 뭐니? 이 좋은 냄새는 어디서 가져왔니? 아! 신기해, 흠 흠흠, 누가 줬을까?”
마트에 갔다 오시는 엄마에게 물어봤지요.
“엄마, 이 꽃 이름이 뭐야? 냄새가 참 좋아. 맡아 봐.”
엄마도 고개 숙이고 꽃냄새를 맡았지요.
“진짜 향이 좋지? 천 리까지 향기를 날려 보내 이름이 천리향이란다.”
“천리향, 천리향 이름도 예쁘네요.”
송이는 시간만 나면 천리향 곁으로 와서 꽃과 얘기를 나눴어요.
“엄마, 우리 춤춰요. 나무도 벚꽃도 슬퍼하면 안 돼요.”
“그러자꾸나. 꽃들도 좋아할 거야.”
엄마는 어린 송이가 기특하고 대견했어요. 양손을 잡고, 떨어지는 벚꽃 사이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발걸음을 멈추었어요.
“송이 엄마, 참 보기 좋아요.”
앞집 사는 혁이 엄마, 위층 사는 보람 엄마가 부러운 듯 말했어요.
“글쎄, 우리 송이가 벚꽃 떨어지는 게 슬프다며, 꽃들 즐거워하라고 춤을 추자네요. 호호호.”
“오, 어린 송이가 우리보다 속이 깊네요. 나도 춤추고 싶네.”
두 엄마가 합쳐 네 명이 깔깔 웃으며 춤을 춥니다. 삼박자에 맞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박수 세 번 치고, 왼쪽으로 세 번 돌고 박수 세 번 치고 어깨까지 들썩들썩 저절로 신이 났습니다.
벚꽃 잎도 기분 좋다는 듯 훨훨 나부끼며 춤을 춥니다.
“거참, 음악이 없어 서운하군.”
지나가던 멋쟁이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신나는 음악을 틀어 줍니다.
“와우, 이제 잘 어울리네!”
할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어린이 여러분, 네 살짜리 송이가 참 귀엽지요.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을 배려하고 가엾게 여기는 송이와 같은 착한 심성이 바로 어린이의 본성입니다. 지혜로운 어린이는 꿈도 아름다워요.
이천십칠년 가을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