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건대, 시인이 일찍 순절하고 타계한 경우이므로 윤동주의 경우 원전 확정 문제는 처음부터 연구자들이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었다. 유족이나 친지가 시인을 대신하여 작품을 선별하고 편집했다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과연 윤동주의 원전으로 인정해도 좋을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선생되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족이나 친지가 작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진 것처럼 주장해도 그들이 시인 자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 연구의 경우 원전의 확정은 연구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윤동주 연구'는 결과적으로 원전 확정의 기본적인 절차를 우회하여 온 셈이다. / '머리말' 중에서
윤동주는, 변절과 배신으로 신음해온 우리 현대 정신사의 중심에서 민족적 양심과 긍지를 상징해온 그리 많지 않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서른도 채 살지 못한 그가 이 빛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그의 순절 때문만은 아니며, 그의 주옥같은 글 때문만도 아니다. 빛나는 순절이었으나 우리의 고질적인 정신적 치매로 두 번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예가 어디 한둘인가? 또한 빛나는 글을 남겼으나,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신의 글을 낯뜨거운 변절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윤동주의 경우는 그의 진솔한 고백이 순절을 넘어 그의 삶을 현재화시키고 있고, 그의 순절이 그의 글에 지치지 않는 생경을 부여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느새 그의 따뜻한 손이 내 어깨에 다정하게 얹혀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