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행위가 죄 짓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때는 정녕 그러했다. 그러나 요즘은 글 쓰는 게 그저 빚을 갚는다는 느낌이다. 나의 죄 때문에 상처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글 쓰는 고통을 반복함으로써 속죄하는 것 말이다. 내가 자초하는 이 고통이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여자들은 카사노바를 열망한다고 한다. 그가 자기를 결코 사랑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만약 그가 자기에게 손을 뻗는다면 언제든 푹 빠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그의 욕망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친다는 뜻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카사노바는 사랑과 욕망의 영역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잉여로 남을 것이다. 닿을 수 없는 환상으로서 그러나 상징적 질서에서 벗어나지도 포함할 수도 없는 예외적 희생물로서...
사랑의 수사학은 사랑의 윤리학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다. 아직 나는 사랑의 윤리를 알지 못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 자체가 인간에 대한 윤리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다.
1년 8개월 전부터 소문자 s시에서 눈을 뜬다. 생면부지의 s시.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장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모든 장소는 궁극적으로 폐허라는 생각...... 사람이 여기 살았다는 흔적...... 사람이 사는 것은 어떤 장소에 흔적을 남기는 행위...... 그러나 폐허엔 아무 것도 없는...... 그래서 더 숭고한......
가을이다. 바다까지 몸을 걸치고 있는 갯벌과 갈대밭, 먼 나라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s시를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