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명랑한 색채는 부드러운 생기를 불어넣고
단순한 선과 여백은 많은 생각을 불러옵니다“
이 그림책의 특징은 겐지 철학과 잘 어우러지는 독특한 그림에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염색작가이자 화가인 유노키 사미로는 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시의 핵심을 그렸지만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밝고 명랑한 색채는 요란하지 않게 부드러운 생기를 불어넣고, 단순한 선과 여백은 오히려 많은 생각을 불러옵니다.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화가의 깊은 연륜과 통찰이 시 세계를 더 풍부하게 해준 덕분입니다. 겐지의 철학과 실천의 다짐이 담긴 『비에도 지지 않고』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미야자와 겐지는 인간이 자연 속의 극히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발전해 왔고 기후 문제, 전쟁 등 인간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분노를 그렇게 목격하고도 여전히 우리 좋을 대로 자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주문 많은 요리점」이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울림을 던져 주는 이유입니다.
우주 만물을 어루만지는 환상과 치유의 음악 판타지
미야자와 겐지 컬렉션 세 번째 작품 『첼로 켜는 고슈』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겐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까닭에 작가의 마지막 동화로 추정되며, 기승전결이 가장 뚜렷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첼로는 겐지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로, 첼로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고 해요. 동화 속 고슈는 겐지 자신을 투영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영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화면에 소리도 색깔도 없던 흑백 무성영화였습니다. 영화관은 ‘활동사진관’이라고 불리며 변사가 해설하고 오케스트라 연주로 영화 분위기를 북돋웠지요. 그런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담당하던 고슈는 지휘자에게 감정 표현, 박자 감각, 기초 실력에 대해서 엄한 지적을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합니다. 연주가가 음악을 즐기지 못하니 듣는 이가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요?
고슈는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와 날이 새도록 연습에 몰두합니다. 그런 고슈에게 동물들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얼룩고양이, 뻐꾸기, 너구리, 들쥐 모자. 이들을 통해 격정적인 감정 표현, 끈질기고 피나는 연습의 중요성을 깨닫지요. 또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되고, 음악이 아픈 동물들을 치료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됩니다.
걱정했던 마을 연주회에서 고슈는 멋지게 연주해 관객과 동료들을 감동시킵니다. 첼로 선율로 동물들과 교감하면서 진정으로 치유받은 이는 바로 고슈 자신인 듯합니다. 겐지 작품에는 세상 모든 것의 진정한 행복을 비는 기원이 담겨 있는데, 고슈의 첼로 선율은 만물을 어루만지며 밤하늘 공기를 타고 우주로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미 『은하철도의 밤』에 그림을 그린 오승민 작가가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이야기를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들판 한가득 바람에 실려 음악이 들려옵니다. 나흘 동안의 에피소드는 모두 한밤중에 벌어지는데, 고슈가 고된 연습에 지쳐 있을 때면 어김없이 동물들이 찾아오지요. 달빛과 어우러지는 동물들과의 에피소드는 우리를 흥겹게도 하고 살며시 미소 짓게도 합니다.
고슈의 오두막은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과 달빛을 배경으로 그려져 『은하철도의 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수정을 거듭한 미완성 걸작인데, 실제로 초기 원고들에는 조반니와 캄파넬라가 열차 안에서 ‘첼로 같은 소리’를 듣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고슈가 첼로를 짊어지고 돌아올 때, 밤하늘에 펼쳐진 투명한 은하수 저편에서 은하철도가 출발하고 있었을까요? 쓸쓸한 물레방앗간에서 온밤을 지새우며 연습하는 고슈의 첼로 소리가 은하철도까지 흘러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고슈가 오두막으로 돌아와 뻐꾸기를 떠올리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렇지만 고슈는 이내 첼로를 꺼내 연습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밤이 깊도록 지잉지잉 첼로 소리가 울리겠지요. 밤의 고요를 뚫고 하늘로, 우주로 퍼져 나가는 첼로 선율을 상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