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화씨 451』이나 『화성 연대기』 등의 대표작 때문에 SF 작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브래드버리는 자신의 작품에서 온갖 장르와 소재와 배경을 넘나든다. 이 단편선에서는 그런 작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공룡과 우주선, 요정과 마법사, 비 내리는 금성과 일리노이 주의 평화로운 마을이 같은 책 속에 공존한다. 인종 문제가 등장하고,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운동화가 필요해 몸이 달뜬 소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생경하거나 익숙한 소재들은 놀라운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독자의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일깨운다.
전편 『런던의 강들』에서 일어난 한바탕의 사건 이후 승진해 경찰로서 1인분, 마법사로서 0.2인분 정도의 몫은 하게 된 주인공 피터 그랜트. 이번에는 소호에서 괴물들을 상대하며 작중 내내 혼돈과 파괴를 몰고 다니지만, 그 와중에도 맥주와 재즈와 섹스를 마음껏 즐기는 젊은이다운 일을 잊지 않는다. 피터의 넉살 좋은 입담은 물론, 작가의 넘치는 런던 사랑과 깨알 같은 정보가 아이러니 가득한 대도시 런던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그려놓는다.
딕은 자신이 기록자일 뿐이라고, 그 시절을 경험했던 자로서 기록을 남길 의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겨 다루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초월자, 절대자, 타자에 대한 강박, 경찰과 감시에 대한 피해망상 등의 주제는, 그 무대를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로 옮겨오는 것만으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층 내밀하고, 고독하고, 끔찍하게 슬픈 이야기로 변한다. 그는 과연 스캐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그의 스캐너는 과연 마지막까지, 어둑하게라도, 제대로 기능했을까.
‘두 세계의 주민’이라 자신을 칭한 브래드버리답게, 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이 모인 『시월의 저택』에서도 두 가지 세계가 뒤섞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일리노이주 워키건이다. 멜빌, 포, 휘트니와 같은 작가들을 처음 만난 도서관과 미국 중서부의 광활하고 풍요로운 풍경은 그의 모든 작품 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의 세계는 할리우드다. 대공황 시대의 막바지에 브래드버리 일가는 일자리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해 왔고, 이곳에서 그는 멕시코 및 아시아계 이민자, 유럽에서 도망쳐 온 문화계 종사자들이 뒤섞인 환경에서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슬쩍 들여다본 격동기의 할리우드가, 기묘하고 괴상한 시월의 가족을 처음 품은 요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뒤섞인 결과, 『시월의 저택』은 서정적이고 아련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미국적인 핼러윈 이야기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