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화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름으로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다. 이들 마흔다섯 명의 천재 화가들이 보여준 절대적 솔직함은 내게도 그런 직관력이 어느 정도는 살아남아 있었을 유년깅 대해 한없는 그리움을 자아냈다. 이 마흔다섯 장의 그림들을 그려내는 동안, 나는 정말 반딧불이 되도록 그리운 그리움에 시달렸다.
그리움이야말로 그림을 그려내는 힘인 동시에 그 본질이어서 절대적 그리움은 결국 그림이 되고 만다. 그리움은 곧 그림이며, 그림은 곧 그리움인 것이다. 그림이 된 나의 이 그리움은 어디로 향해 이토록 오랫동안 날갯짓을 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구원 따위는 오지 않는 세상임에도.
인사동과 나 사이는 오래 묵은 된장입니다. 그가 내 속에 들어와, 아니 내가 그 속으로 파고들어 정 주고 받는 맛을 들인 지가 벌써 스물다섯 해를 넘겼거든요. 그동안 많은 인사동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더러 꽃시샘 바람으로 구차하고, 또 더러는 아침 우물가 감나무 가지 끝에 앉아 우짖는 까막까치의 울음처럼 꼭두서니 빛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풍류세상에서 빛나고, 또 예술세계에서 깊이 묻히거나 아주 저물다가 소식이 가물거릴 때마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내 추억의 마음 한 자리에는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된 사연들이 장독대에 내려앉는 함박눈처럼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그 눈들을 맨손으로 '쓰윽' 쓸어봅니다. 아주 잠깐 손끝이 시려올 뿐,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사한 기운이 손바닥을 부드럽게 감싸옵니다. 인사동과 내가 정분이 난 거지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랑이 이런 건가요.
만질 수 없는 그리움까지, 눈썹 밑에 살풋 밟혀옵니다. 그 그리움과 정분에 철없이 온몸 들썩이다가 ‘인사동 블루스’라는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이 소설에 매달리던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요술지팡이나 도깨비방망이를 갖고자 했던 열 살 적의 꿈으로 띄워진 종이비행기를 타고서 아직 가보지 못한, 산 넘고 바다 건너 낯설고 물설고 말까지 설어 더욱더 먼 세계로 훨훨 날아다녔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면 그 종이비행기는 갸륵하게도 구원의 그날이 오리라 믿었던 옛날처럼 날아간다.
(...) 종이 비행기 접는 법을 잃어버렸던 어떤 메마른 가슴이 이 소설 <종이비행기>를 읽고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문득 기억해 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의 축복이면서 동시에 이 <종이비행기>를 쓴 나의 행복일 것이다.
이 소설에 매달리던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요술지팡이나 도깨비방망이를 갖고자 했던 열 살 적의 꿈으로 띄워진 종이비행기를 타고서 아직 가보지 못한, 산 넘고 바다 건너 낯설고 물설고 말까지 설어 더욱더 먼 세계로 훨훨 날아다녔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면 그 종이비행기는 갸륵하게도 구원의 그날이 오리라 믿었던 옛날처럼 날아간다.
(...) 종이 비행기 접는 법을 잃어버렸던 어떤 메마른 가슴이 이 소설 <종이비행기>를 읽고 종이비행기 접는 법을 문득 기억해 내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의 축복이면서 동시에 이 <종이비행기>를 쓴 나의 행복일 것이다.
그들 천재마다 달리 지닌 고뇌와 다양한 개성을 엿본다는 것은 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애정 이상으로 나를 흥분케 했다. 그것은 성욕과도 통하는 원시적 끌림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작품과 그 작품을 낳고 키운 도시들의 인상으로부터 나는 화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을 손에 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