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빙의 영화를 보았고, 영화가 질문을 던져오면 대답을 찾기 위해 애썼다. 어떤 영화는 대답을 미루었고, 또 다른 영화는 그 현장에 찾아가 옆에 서서 지켜보았으며, 때로는 문자 그대로 질문하였다. 왕빙은 질문을 피하는 법이 없었고, 대답을 우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질문은 고스란히 내게 다시 돌아왔다. 때로는 내가 지나쳤고, 때로는 미루었다. 그때마다 나 자신에게 말했다. 아마 다시 돌아오게 될 거야, 결국 다시 그렇게 될 거야.
영화에 관한 첫 번째 책을 묶으면서 나는 이 책을 어떤 주제, 어떤 토픽, 어떤 시기, 어떤 감독, 어떤 테마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만일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묶는 유일한 고정점이 있다면, 그건 우정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우정, 영화가 내게 준 우정, 영화를 둘러싼 우정. 오로지 영화만이 내 삶을 외롭지 않게 곁에서 안아 주었다. 나는 이 책을 만들면서 내가 맛본 우정을 담고 싶었다.
이 책은 21세기 한국 영화의 첫 십 년에 관한 연대기 혹은 영화사 안으로의 개입이 아니다. 내가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실패를 각오하고 그 틈새의 시간 사이에서 나 자신을 향해서 끌어내는 대답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이 말을 부정적인 제스처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기쁨에 차서 노래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영화에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영화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는 그들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하여 방어할 것이다. 그런 다음 기꺼이 공존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영화들은 각자의 독립된 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