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그 자체가 모순적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모순적이라면 그 모순을 반영하는 법도 모순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설령 그것이 권력의 법이라 해도 법 그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민중의 법이라 해도 그 자체가 민중의 영구불변한 이상은 아니다. 권력의 법일수록 강제력에 의해 실현되는 측면이 강하고 민중의 법일수록 자발적 동의에 의해 실현되는 측면이 강하지만, 권력의 법도 자발성에 의해 상호 규정되며 민중의 법도 강제성에 의해 상호 규정된다.
지금 내가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려는 발언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통념'의 비난을 무릅쓰고 어렵게 행해 온 발언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을 제외하고는 '옛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생소한 논리들일 것이다. 사실 내가 어떤 신념에 따라 확신을 갖고 이런 발언들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익숙한 지배적 논리를 위선이라며 드러내고 반박하는 작업은 거북한 일임이 틀림없다.
특별히 '김대중 이후, 지역문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사람들을 생각할 경우 그 거북함이 더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거북함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대결하려 한다. 가혹한 비판이 있더라도 각오하고 있다. 그 충돌만큼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이다.
한때는 "'지역감정'을 타파하자!"는 식의 주장이 그나마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 이제는 아예 '지역'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로 생각하는 것이 대세다. 그저 열심히 '보수/진보'를 가르며 정책을 논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진실이 불가피해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 지역문제로 돌진한다. 특별히 계층적 정책만을 논하자고 주장하던 그 사람들이 다른 한 편에서 바로 그렇게 한다. 음습한 그곳에서는 언제나 "지역이 모든 것이다!"
영화는 이데올로기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없는 영화도 없다. 예술영화는 예술영화의 이데올로기가 있고, 오락영화는 오락영화의 이데올로기가 있으며, 포르노영화는 포르노영화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조금 우긴다면 이데올로기는 영화평론의 '최종심급'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비평은 언제나 이데올로기 비평에서 소화불량에 걸려버린다. 사실 이 이데올로기 비평을 영화평론가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영화평론가로서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이데올로기만을 연구하는 이데올로기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또한 영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은 영화평론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필자가 '영화 속의 법과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영화 비전문가의 이데올로기 비평이 이데올로기 비전문가의 영화평론을 보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이 책은 대학교양강좌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지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특별히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뭔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궁금했던 경험이 있는 관객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을 정독해주기를 당부한다. 책의 구성은 영화 한편 한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로 서술되고 있지만 그 독립적인 이야기들이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지난 100년의 법과 이데올로기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부족한 저술이 독자가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2003년 6월 5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