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라는 긴 터널을 헤쳐 나오면서 화려한 외양보다 사람의 내면 탐구가 새로운 미덕으로 부각되고 있다. 속도를 높이는 데만 치중해온 삶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소홀해온 이웃들의 삶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돌아보려고 노력해 왔다.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지만,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아온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고, 또한 밖으로만 치달려온 나의 삶을 돌아보는 데도 마음을 쏟았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질 들뢰즈는 인간과 동물, 식물, 사물들을 아울러 ‘욕망하는 기계’라고 명명한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고 흐름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힘의 존재 그 자체를 ‘기계’로 본 것이다. 지난 2년여 우리가 아프게 견뎌온 코로나19 팬데믹도 이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명의 발 빠른 발전 못지않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은 물론 자연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백신을 한발 앞서기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는 말해준다.
무언의 음악이 사회와 인간을 넉넉하게 담아내듯, 시의 이미지와 언어의 환기력을 활용하여 우리 시대의 사회상과 나아갈 바를 담는 데 부심했다. 그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화려한 문명 뒤에 숨은 드라마에 대한 따스한 관심을 통해 물질을 넘어 정신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시의 미덕을 심도 있게 추구해 보았다.
-박몽구(시인, 문학평론가)
북한산 비봉 가는 길에 노란 산수유 꽃대궁이가 다투어 망울지면서 온 계곡을 물들이는 걸 보았다. 산수유 향기가 등을 도닥여 주는 덕분에 가파른 바위 등을 거뜬히 넘을 수 있었다. 산수유가 꽃샘추위의 매서운 손을 뿌리치고 봄을 퍼뜨리듯, 시는 나의 나태함을 일깨우고, 유한의 울타리를 넘어 내면을 뜨겁게 달구는 도가니이다. 젖거리의 완강한 불온함을 넘어 먼 길을 보게 해주는 반려이다. 익숙한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첫걸음을 떼어 놓을 때의 막막함과 떨림을 여기 옮긴다.
묵은 마음 버리고 첫 삽을 떠야겠다.
나의 시도 서설이 지워버린 향로봉 길이었으면 싶다. 세상의 상처들을 말끔히 지우고 무구한 것들만을 담는 눈이기 바란다. (...) 손가락이 만들어 내는 기교가 아닌 진흙탕에서 뒹구는 인간을 담은 음악, 지위와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담은 인간을 그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