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특수 목적을 위한 영어(English for Special Purposes : ESP)의 한 영역으로서 국제 통상을 다룬 영어 교재였다. 한마디로 국제 통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물론, 국제 통상 교섭에 필요한 영어 능력 배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로 영문으로 된 교재의 필요성이 필자로서는 절실했던 것이다.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는 지구상 마지막 미개척 영역이다. 특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해상 영토가 육상의 4배가 넘는 한국에 있어 바다의 가치는 더욱 크다. 바다는 저렴하고 안전한 크루즈 항로, 무역 항로, 해저 자원 그리고 수산물 등을 통해 큰 국부를 창출해 줬다.
오늘날 관광의 새로운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크루즈선은 항해 중 선상에서 여가를 즐기고 항해 중간에는 기항을 통한 관광과 새로운 경험뿐 아니라 선박의 편의 시설을 이용하면서 위락을 목적으로 하는 여객선이다. 크루즈선은 지정된 항만 간을 오가는 정기여객선과 달리 언제든지 항로를 변경하여 크루즈 고객이 원하는 항만으로 크루즈 상품을 구성하는 부정기선의 특징이 있다. 한번 항구가 지정되면 항로를 폐쇄할 때까지 고정적으로 기항해야 하는 여객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정통적인 크루즈선은 미국의 경우 하절기에는 카리브해, 동절기에는 알래스카로 기항하는 상품을 운영하며 항구는 매번 변경된다.
크루즈선은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한 운송수단으로서 항공기, 철도와 경쟁하던 여객선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이미 20세기가 끝날 무렵에 세계적인 크루즈 선사들은 단순한 위락이나 휴가가 아니라, 선상에서 기항지 언어 습득과 기항지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크루즈 상품을 출시하였다. 요즘은 선박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 크루즈, 피요르드 협곡 운항 크루즈, 파나마운하 통과 크루즈 등의 독특한 상품이 성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항지로 이동하기 위해 크루즈선에 승선하는 것이 아니라, 크루즈선 자체를 거대한 위락시설, 즉 여행목적지로 인식하여 항해 종료일까지 크루즈선에 머무르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크루즈 시장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 독특한 관광지 그리고 양호한 지리적 조건에 힘입어 새로운 크루즈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 크루즈 시장은 중국이 주도하는 시장이며 상해 - 한국 - 일본으로 연결되는 항로 구성이 기본적이고 10일 이하의 단기 크루즈이다. 크루즈 관광객의 절대 다수가 중국 상해를 출항한 중국인이며 주요 기항지는 상해에서 가까운 후쿠오카와 오키나와에 집중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중일 주요항만에 기항하는 크루즈선은 총톤수 7만톤 이상의 대형선박들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크루즈 선사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승객 인당 운항단가의 인하라는 목적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막대한 자본을 확보하지 못한 사업자는 시장진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15년에 크루즈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지만 2024년 현재 우리나라 바다에는 외국적 크루즈선만이 항해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 기업이 국적 크루즈선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중고선이든 신조선이든 먼저 선박이 있어야 한다. 2012년에 설립되어 1년 만에 폐업한 크루즈 선사 이후에 아직까지 국적 크루즈 선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적 크루즈선의 출범을 앞당겨 본격적인 크루즈 대중화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바다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고, 바다를 국민의 행복 공간으로 만든다.” 이는 한때 해양수산부의 미션이었는데, 당시 이 문구를 보고 이보다 더 좋은 미션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한진해운 파산 사태를 겪었다. 바다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기는커녕 기존의 가치도 잃었으며, 바다가 국민의 불행 공간이 돼 버리지 않았던가. 이런 점에서 바다를 행복의 공간으로 느끼게 하고, 바다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국적 크루즈선이 절실하다 하겠다.
머지않은 시기에 국적 크루즈 사업자가 나타난다면 초기에는 한 · 중 · 일 중심의 동북아 크루즈 항로를 개척한 후에 북미시장과 유럽시장에서 영업을 확대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운영되고 있는 크루즈 선사를 인수하여 바로 해외의 크루즈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는 크루즈선 도입에 필요한 선박금융과 표적시장 진입을 위한 경영전략이 필요하다.
크루즈 선사는 편의치적제도를 활용해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선원을 고용하고, 건조비가 싼 나라에서 선박을 건조하며, 융자조건이 좋은 나라에서 선박 건조 자금을 조달하고, 선박의 국적등록 조건과 비용이 선사에 유리한 나라를 선택해 선박을 등록하는 등 매우 다국적으로 해운기업을 경영한다. 이는 전세계 외항 해운업계의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오늘날 기업은 경영에 가장 유리한 곳에서 필요한 생산 요소와 경영 자원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크루즈 선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외항선사는 국적의 아웃소싱이라 할 수 있는 편의치적제도를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선박 등록비만 받고 선박의 관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 편의치적이다. 크루즈 경영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이러한 해운기업의 운영방식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 바다를 통해 웃고 우는 사람들, 살고 죽는 사람들 그리고 이 바다로 즐기고 싸우는 세계 속에서 지구가 생긴 이래 육지에 비해 모습이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은 바다를 지구인이 자손만대 평화롭게 사용하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크루즈선이 우리 바다를 분쟁의 바다가 아니라 행복 · 기쁨 · 치유 · 안락 · 평화 · 자유 · 우호 · 협력의 바다로 만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38년 넘게 대학 강단에서 강의 · 연구를 해 왔는데, 그 키워드는 바다와 연관이 있다. 국내에서는 무역학, 일본에서는 경영학, 영국과 미국에서는 경제학을 베이스로 바다 관련 사회과학적인 연구를 해 왔다. 1986년 구 부산수산대학교 교수 시절에 선원교육 이수 후 선원수첩을 발급받아 약 2달간 원양어업 실습선에 승선도 해보고, 매년 1-2회 학생들과 함께 한일 간 여객선을 승선해 왔다. 뱃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지지만, 그동안 다양한 모습의 바다를 여러 선박에서 경험하려고 노력해 왔다. 공동 저자인 김성국은 필자와 같은 연구분야에서 만난 지가 약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사제지간이 되었으며 제자는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한 후 선박의 항해사로서 원양을 항해했던 전문가이며 해운산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연구자이다.
대학원에서 해운론 강좌를 담당했던 우리는 공통된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크루즈산업을 천착하고 본서를 집필하였다. 지금까지 발간된 크루즈 관련 국내외 저서와는 아주 차별화된 내용을 담고자 노력했다. 관광의 측면에 치우치거나, 유투브 쇼츠와 같은 크루즈 관련 단편적인 내용을 모은 책이나, 크루즈 가이드북 같은 책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한마디로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그리고 해운, 항해, 경제, 경영, 금융, 관광, 법리 등의 관점에서 학제적으로 저술했다.
국적 크루즈선의 도입이 기대되는 시점에 크루즈 경영자, 소비자, 학생 그리고 여행사 등에게 필요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논하였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선학제현의 가르침을 청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을 도와 주신 박영사의 안상준 대표님과 편집부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4년 바다의 날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