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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이인규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2년, 대한민국 부산

최근작
2023년 4월 <유토피아로 가는 여정>

53일의 여정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 현대사는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변증법이라 불리는 헤겔의 철학은 인간 사유의 진보 과정을 설명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몽환적인 사유기법이어서, 이른바 문학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 말할 것도 없이 창작의 동기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정반합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정치 영역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하긴 집권 세력이 바뀔 때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접근법과 해석이 존재하니, 그의 주장이 언뜻 이해된다. 산골에 살며 텃밭이나 가꾸고 소설이나 쓰면서 좋아하는 통기타 음악이나 하지, 웬 철학(정치 영역) 타령이냐, 하면 할 말은 없다. 굳이 변명하자면, 모든 분야에서 용인되는 변증법이 부디 이 분야에도 유용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서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치권은 소용돌이치는 안개 정국 속에서 협치, 화합, 통일, 평화라는 키워드 대신, 분열과 대립 그리고 사정과 복수라는 살벌한 단어가 신문 지상과 TV, 유튜브를 장식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오래된 미래’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우리의 기질(DNA)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대 이전, 서로가 물고 뜯던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에게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당연한 의심이다. 그래서인지 나로선 이 소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최초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한 모티브는 2019년 3월 북·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뒤, 언론에서 김여정 당시 노동당 부부장의 문책설, 자중설이 보도된 후였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게 진실인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가 53일 동안 종적을 감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53’일을 그간의 남북관계 팩트와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때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냐 아니면 이전으로 돌아가느냐에 관한 변곡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조마조마했던 징조는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2018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메아리 없는 공허로 끝나면서, 이전에 품었던 희망과 꿈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진정으로 남북의 번영과 평화를 외치는 이가 적어졌다. 되려 북측의 도발에 맞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핵만 가지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문득 작고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대화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때가 2002년 5월 29일이었다. 귀촌 십 년 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나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동안 나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몽환적인 사유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이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우리 모두 2019년 3월 북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복기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흔쾌히 출간을 허락해준 도서출판 푸른고래 오창헌 대표, 그리고 기꺼이 표사(추천사)를 써준 경·부·울 문화연대 스토리 위원회 회원인 윤창영 시인, 백승휘 소설가, 신호철 소설가, 박미정 동화작가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내년이면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나는 막내딸 미래의 무운을 빈다. 2022년 12월 1일 산청 자택, 구들장(창작실)에서

내 안의 아이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마 내 나이 스물을 갓 넘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게 낯설던, 그래서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 나이의 세상에 대한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소설이라는 매력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저는 좋은 글쓰기의 기본인 열심히 읽지도, 상상하지도, 쓰지도 않으면서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 여자에게 무작정 넌 소설가의 아내가 되어야 해, 하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설핏 웃음이 나오지만 그즈음 방바닥에 엎드려 밤새워 원고지에 글을 썼던 기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소설이 위기라 그럽니다.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는 "향후 25년"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들며 "소설은 소수의 컬트적 취향을 가진 마니아들의 장르로 전락할 것"이라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한 소설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내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읽고 또 쓰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어쨌든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제 첫 창작소설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글이 제 손에서 떠나는 순간 여러 가지 기대와 비평은 오롯이 제 몫이겠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어느 장소에든지 제가 만든 창작곡 음반(CD)을 들으면서 책을 읽을 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고, 가슴이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동굴 파는 남자

‘시는 정신에 탄력을 주고 삶의 구김살을 펴는 과정’이라고 정현종 시인은 말했듯이 내게 있어 소설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내 삶의 구김살을 펴는 대신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글쓰기를 통해 과연 나와 타인간의 소통의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돈이 되지 않는 문학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누가, 얼마나 이 책을 읽어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결국 외로움은 그냥 외로움이었다. 평화학연구자 정희진님의 말처럼 외로움은 어떤 섬에 사는 노인처럼 자연을 혼자 겪는 것이었다. 깜깜하고 바람 불고 사람 없고 가게 없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 이것이 외로움이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을 내는 늦가을, 따스한 볕 아래 할 일없이 졸고 있는 내 삶은 분명, 천천히 가고 있다.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

이곳으로 들어온 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몇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지역 문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 저는 이 지역에 살며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이상, 마음의 빚을 문학으로 청산하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라는 통한(痛恨)의 역사가 버젓이 존재합니다. 마침 이 문제를 모티브로하여 집필을 시작(경남문화예술진흥원 입주 작가 활동 시)하려 할 때, 경남민예총을 비롯한 경남작가회의, 산청문인협회, 유족회 등 여러 단체에서 이 주제를 끄집어내 문학으로 승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새기면서, 제 나름대로 이 문제를 다른 주제와 함께 엮어, 풀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실제 대신 가상의 장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자행된 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일생이 파괴된 한 노인과 소리꾼인 딸을 등장시켜 현대사의 비극을 재조명하고 해명하는 한편, 다소 무거운 주제를 현 시대적 추세에 맞게 미스터리 등 장르적 색을 입히고, 중간 부분에 액자소설의 형식을 삽입하여 소설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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