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대로, 모자란 대로
살아보니 세상이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사는 게 결코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공들여 정성으로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겨나지요. 그래서 세상이 살만한 게 아닐까 합니다. 서른 즈음까지는 참 버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살아보니 마흔이 가장 역동적이고 쉰 줄에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기고 예순에야 삶이 무르익는다는 걸 알았지요. 그때마다 빛나는 순간이 생겨났고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허니 인생은 어느 순간이나 축복, 그 자체이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잘 먹고 사는 것과 잘 사는 건 다르지요. 가진 게 많아 호화주택에 고급 승용차타고 명품사고 수시로 해외여행 다니는 건 잘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먹고 살면 결코 잘 사는 게 아니지요. 넉넉지 않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게 세상이치입니다. 우리가 직업으로 일하면 돈을 받지만 봉사하면 선물을 받게 되지요. 내 돈 써가며 이웃을 돕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니 존경과 사랑을 선물 받는 것입니다. 그게 잘 사는 길이지요. 그게 가치 있는 삶이고 그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따뜻하게 합니다.
저는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운 일이 없지요. 피고 지는 순환의 흐름을 통해 스스로 옥토를 넓히는 자연은 삶을 경건하게 합니다. 그 경외감이 가슴속 깊이 뿌리를 내려 정신적 지주가 되고 스승이 되지요. 이를 명심하면 작위적으로 글 쓰는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생각이라는 무형을 유추해 글이라는 실체로 옮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비우고 내려놓는 걸 우선으로 하는 삶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이를 글로 옮긴다는 건 정말 조심스런 일이지요.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글에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는 듯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의지나 철학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구호나 이론에 그치기 쉽지요. 뿌리가 밖으로 훤히 드러나면 모양도 흉하거니와 나무 자체가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뿌리만으로는 나무가 될 수 없지요. 뿌리를 튼실하게 하되 그 뿌리가 드러나지 않게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표면장력이 될 때까지 기다려 시를 쓴다.’는 릴케처럼 어떻게 하면 제 마음에 새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 맺을 수 있을까?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제가 안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글 쓰는 법이 마음속에 각인돼 있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지요. 문학을 전공하면 기초가 단단해질 수 있지만, 자칫 틀에 얽매여 문장이 제대로 숨 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살아보니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세상만사가 다 완벽한 것도 아니지요. 서툴면 서투른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글을 쓸 생각입니다. 눈 시린 햇살처럼 화사하진 않지만 바라볼수록 은은하게 스며드는 달빛처럼 제 나름의 색깔과 사람냄새 나는 저만의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좋은 작품으로 책을 더 빛나게 해주신 김양평 전, 한국사진작가협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물 흐르듯 여여하게
‘여여(如如)하다’,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즐겨 쓰기도 하고요. 우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란 것은 흔적이 없습니다.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근본을 추적해 보면 실제로는 텅 비어 있지요. 성품이나 성질, 형상이나 현상이 수없이 변화를 거듭해도 근본은 늘 그대로입니다. 사상·사건·사실이라는 것도, 도리나 이치라는 것도 나뉘어 있는 수 있지요. 저는 이 말을 ‘한결같이’, ‘흔들림 없이’, 또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평온하게’, ‘마음을 놓고’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너른 고을(廣州)에서 태어나 자란 것은 행운입니다. 산자락을 타고 조잘거리면서 내려오는 시내와 여여하게 흐르는 남한강이 어우러진 곳. 이를 바라보면 바라보는 이도 저절로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는 곳. 아름다운 자연 속의 생활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고 한 편의 시였지요.
넉넉하진 않았지만 크게 불편한 것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전기가 들어왔지요. 1970년 농어촌 전기 보급률이 20% 정도였으니 고교 입학 때인 1972년에는 조금 더 높았을 테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건 줄로 알았습니다. 전봇대는 껍질을 벗긴 낙엽송에 콜타르를 잔뜩 칠한 것이었는데,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던 그때는 이것도 놀이 대상이었지요. 누가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나 내기를 하다가 손바닥이나 허벅지를 찔리기도 했습니다. 산이나 들로 나가 나물을 캐거나 열매를 따고, 냇물에 들어가 천렵하는 게 고작이었던 농촌. 가끔 반딧불이 떼 지어 날아드는 원두막에서 은하수를 바라보다 잠이 들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니 그때의 아련한 파스텔 톤 삶이 글을 쓰게 했습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생각한 것을 종이에 옮겼지요. 중학교 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입상, 이를 계기로 더 열심히 썼습니다. 고교 시절 연세대학교가 주최한 ‘전국 고교생 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이후에는 198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요. 자연과 함께한 삶이 가슴 한구석에 감성을 뿌리내리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정작 등단 이후, 특히 나이가 들수록 글 쓰는 일이 조심스러웠지요. 사는 게 연륜을 더하면서 무르익듯 글도 그렇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뒤돌아 살펴보니 젊은 시절에 쓴 것은 말 그대로 내키는 대로 써 내려간 글이 많았지요. 생뚱맞은 문장이 적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게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불혹을 넘기면서 달라지더군요. 객기 부리지 말자, 넘치지 않게 쓰자, 많이 쓰기보다 제대로 쓰자 다짐했습니다. 말과는 달리 글은 벌거숭이로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짙었으니까요.
피고 지는 순환의 흐름을 통해 스스로 옥토를 넓히는 자연은 삶을 경건하게 합니다. 그 경외감이 가슴속 깊이 뿌리를 내려 정신적 지주가 되고 스승이 되지요. 이를 명심하면 작위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더군요. 생각이라는 무형을 유추해 글이라는 실체로 옮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비우고 내려놓는 걸 우선으로 하는 삶도 지난한 일이거니와 이를 글로 옮긴다는 건 정말 겁나는 일이지요.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글에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는 듯해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의지나 철학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구호나 이론에 그치기 쉽지요. 뿌리가 밖으로 훤히 드러나면 모양도 흉하거니와 나무 자체가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뿌리만으로는 나무가 될 수 없지요. 어떻게 하면 뿌리를 튼실하게 하되 그 뿌리가 드러나지 않게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릴케가 ‘표면장력이 될 때까지 기다려 시를 쓴다.’고 했듯 어떻게 하면 비운 마음이 절로 무르익어 가지와 잎들이 무성하게 할 수 있을까?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제가 안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글 쓰는 법이 마음속에 각인돼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도 생각하지요. 문학을 전공하면 기초가 단단해질 수는 있지만, 자칫 틀에 얽매여 문장이 제대로 숨 쉬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서툴면 서투른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쓸 생각입니다. 물론, 어깨너머 살얼음이 깔리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요. 하지만 물 흐르듯 여여하게 옮겨 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깨어있는 마음으로 저만의 색깔을 채색하고자 합니다.
2021년 가을
글쓴이 홍승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