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방황과 서성거림의 날들을 함께 했던 벗들,
쓸쓸하고 아득한 풍경 속으로 나를 이끌었던
안성의 풀과 나무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이 시집이 그 빚을 대신했으면 좋겠다.
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노력했으나,
내가 미처 다스리지 못한 말의 옹이들이 녹슨 못처럼 불거져 있음을 본다.
그것이 결국 마음의 옹이임을 처음인듯 깨닫는다.
내 두 번째 시집은
저 아름답고도 슬픈 들판에 기대어 지은 것입니다.
그의 숨이 가 닿는 곳을 따라 여기 와
짧지만 긴 시간
햇살과 바람과 비가 가득한 창에 바투 붙어
그의 들끓는 자유와
자주 끊어졌다 간신이 이어지는 숨결을
내 몸속응로는 들이는 일로 한 시절을 살았으니,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 시인도 사랑도 아니었을 테지요.
그리하여 이즈음 어디론가 자꾸만 가려 하는
그의 뒷모습을,
가련하고도 무서운 저 뒷모습을
우두망찰 지켜보다
바람만바람만, 나는 그의 뒤를 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