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틈틈이 짧은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죽은 자들이 돌아온 것을 그렸고, 20대에 봤던 철거촌 옆 큰 교회 모습을 하나님이 직접 보면 뭐라고 할까 상상하며 만화를 그렸다. 그리고 세월호를 보면서 단편 만화 ‘괴물들’ 이야기를 구상했다. 아파트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파트 값이 오르기만을 바라며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 깨어 있지 않고 잠든 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
어쩌면 지난 10년의 기록일 수도 있겠다. 지나고 보니 그만큼 무서운 세상이었을까.
(줄임)
우리 사회에서 괴물들은 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독재나 억압, 정치적 무관심 들이 괴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내가 괴물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괴물이 되면, 괴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존재가 된다. 정말 두려운 것은 저기 산 너머 또는 삼팔선 너머에 살고 있다는 이름 모를 괴물의 존재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모습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괴물들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것……. 나는 그게 무서웠다.
인혁당 사형수, 그들이 불온한 간첩이 아닌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남편이고 민주주의와 통일을 생각했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봄꽃들이 수십 번 피고 지는 동안 늘 정부의 감시와 통제 속에 살아야 했던 식구들의 고통스런 삶이 있었습니다.
이 만화는 박근혜 정부 시작과 끝 사이에 진행된 작품이어서 나로서도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느 날 불쑥 또다시 우리에게 찾아왔던 유신의 ‘추억’을 돌이켜보며 더 이상 침묵하는 방관자로 살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잡아간 작은 방게들이 얼마 못 가 움직이지 못하고 죽게 되자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그것을 마당에 내다 버린 적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생명도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닌 소중한 우리의 친구라는 인식을 갖게 해 주고 주인공인 예주가 할머니 집에서 바다까지 작은 방게를 데려다주는 모험을 통해 어른들에게는 인간들이 무심코 하는 행위들이 작은 생명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잊지 말자.
어떤 이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시간은 약이 아니다. 치유되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 무뎌지고, 잊히는 건 약이 아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공간을 잡아먹고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들지언정 사람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이 평화로울 그날을 그려 본다.
100년 전 일제의 폭압이 난무하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던 엄혹한 시대가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고 했던가... 그들에게 있어 낯선 땅 조선에서 온 어느 한 사람의 노래는 마치 새벽별처럼 절망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삶의 희망으로 서로를 결속시켰을 것이다. 행여 어떤 사람들은 총칼로 싸우던 준엄한 시대에 음악이라는 것은 고작 사치에 불과하며 자유로운 나라를 되찾는 일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쟁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본성을 잃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일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끈은 바로 예술이었기에 결국 한 사람의 노래는 총칼보다 강했고 혁명 그 이상의 힘을 보여주었다.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2019년 3·1혁명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것이 단지 기념을 하기 위한 거창한 한 해가 아닌, 100년 전 못 다 이룬 많은 사람들의 꿈을 다시 이루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