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니, 우리나라도 영미 분석 철학과 유럽 대륙 철학에 다 관심을 가지고 철학을 하시는 분은 매우 드문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연세대 철학과의 이승종 교수님이 양쪽을 다 아우르는 글을 쓰시는 대표적인 학자이신 걸로 보인다. 오래전에 연세대에서 옮긴이에게 이승종 교수님의 「크로스 오버 하이데거」를 연세 학술상 후보 저서로 심사를 의뢰하였는데, 아마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양 전통의 철학을 다 충실하게 다루고 있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일 것이다. 당시 쓴 심사평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칸트의 절창을 흉내 내서 “대륙 철학 없는 분석 철학은 공허하고, 분석 철학 없는 대륙 철학은 맹목이다.”라는 글귀를 집어넣었던 기억은 난다.
오래전에 특이하게 대학원 영문과 학생들을 지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페터 지마의 ≪문예미학≫과 함께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강의를 진행하였다. 읽다 보니 너무나도 명쾌한 캐럴의 설명과 깨끗한 문장에 매료되어 저절로 번역에 손이 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성공하기 쉬운 유럽철학 쪽의 예술철학서들은 바쁘게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지만, 개념적 엄격성을 요구하는 분석철학 쪽의 예술철학서들은 이런저런 장애에 걸려 번역되어 나오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쪽 전공자들이 학문적으로 한쪽만 편식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번역 작업에 임하였다. 분석철학계에서 이전에 나왔던 비슷한 경향의 책과 비교해 보면, 구성, 내용, 설명의 면에서 이 책이 단연 더 빼어나다는 점을 곧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귀스도르프의 책을 읽다가, 선입견과는 달리 이분이 마이너리티 철학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분을 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른 저서들을 살펴보니, 내 세부 전공인 언어철학과 맞닿을 것 같은 책인 <파롤>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구조 언어학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대략적인 소개에 마음이 이끌렸다. (…) 실존 현상학의 관점에서 언어만을 주제로 삼아서 접근한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많이 소개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이 책이 기존 분석철학 위주의 언어철학을 보완해주는 입문서의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해본다. 대체로 까다로운 철학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정 수준 정신의 경지에 도달해 계신 분들의 체험일 것이기에, 소수일 독자층에게 경의를 표한다.
현대 유럽 대륙 철학의 중요한 방법론으로서 현상학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해석학이다. 주지하다시피 원래 해석학은 성서 해석학, 문헌 해석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슐라이어마허에게 와서 해석 방법 일반에 관한 이론으로 확립되었다. 슐라이어마허에게 해석학은 이해 기술론(Kunst des Verstens)으로서, 이 기술론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 올바른 해석의 실천을 의미하였다. 그 뒤에 해석학을 굳건한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정초한 철학자는 빌헬름 딜타이이다. 딜타이의 해석학은 19세기 말 위기에 처한 철학의 자기 정체 확인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에 들어 철학의 권위를 뒤흔드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그때까지 자연철학이라고 일컬어져왔던 철학의 한 분야가 뉴턴 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분가한 사건이다. 자연에 관한 연구는 이제 자연과학자들의 몫으로 넘어갔으며, 철학은 그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정신의 영역을 움켜잡고 자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자연과학이 분가에 만족하지 않은 채, 정신의 영역을 자기들의 학문 영역으로 편입시키려고 끈질기게 도전해왔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은 역사, 예술과 같은 인문과학 또는 정신과학의 문제까지도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낳았던 것이다. 철학은 이에 맞서서, 철학을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정신과학으로 규정하고, 정신과학의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방법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신칸트학파의 철학과 딜타이로 대표되는 해석학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석학의 완성자 딜타이는 이런 배경 하에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을 대립시키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 정신과학을 이해하는 방법론이 바로 해석학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해’라는 개념은 딜타이에게 와서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역사, 철학, 예술 등을 탐구하는 독자적인 방법적 개념으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 후 인문학자들은 당당하게 자기들의 학문 영역을 옹호할 수 있게 되었다. “봐라, 인문학에도 자연과학 못지않은 방법이 있다. 우리도 진리와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라고. 자연과학은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반면, 인문학에서 우리는 비수학적 의미를 가진 현상인 예술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적 이해에 도달한다. 인문학은 다르기는 하지만 자체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