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를 로빈슨 스스로가 깨닫게 되는 소설, 그것이 터무니없는 짓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의 건설 사업이, 이를테면 내부로부터 잠식되어 붕괴해 버리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는 방드르디가 불쑥 나타나서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리는 그런 소설을 말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지 상태 위에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종교, 새로운 예술, 새로운 유희, 새로운 에로티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소설 속에서 방드르디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까닭입니다. 그는 미래를 열고 기획하며 로빈슨으로 하여금 과거의 재구성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문학책이나 철학책은 독자와의 만남에 의해 비로소 태어납니다. 그것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읽히지 않은 책은, 나에게는 그것이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해줄 독자를 기다리는 잠재적인 작품입니다. 한 권의 시적인 책은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서 시적인 재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의 독서로부터 태어날 <생각의 거울>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나는 그것이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 여러분께서 제게 그것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미리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여기서는 시간보다 공간이 더 중요하다. 눈이 왕이다. 눈이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 미묘한 심리학이나 축축한 내면생활 같은 것은 알 바가 아니다. 존재와 사물의 아름다운과 이상함, 묘한 생김새나 맛은 행복하고도 만족을 모르는 사냥꾼에게 충분한 보람과 보상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근원적인 열정은 다름아닌 호기심이다. 아담과 이브에게 지혜의 열매를 따먹게 시킨 것도 바로 그 호기심이니까 말이다. 호기심은 곧 발견하고 보고 알려는 욕구, 그리고 예찬하고자 하는 욕구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금 구슬>은 우선 이미지에 관한 소설이오. 내가 이 작품을 쓸 때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사진'이었소. 이야기는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에 살던 한 소년이 프랑스에서 온 금발의 여자에게 사진을 찍히는 것으로 시작되죠. 그다음엔 사진을 찾아 프랑스로 떠난 소년이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에서 겪는 에피소드가 이어져요.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철학 콩트 '금발의 여왕'도 초상화, 즉 이미지에 관한 것이오. 결국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이미지죠.
― 선집(選集)의 제목을 <흡혈귀의 비상>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독서에 관한 성찰을 담은 첫 번째 에세의 제목입니다. 한 권의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흡혈귀들을 풀어놓는 것입니다. 책이란 피를 많이 흘려 마르고 굶주린 새들로, 그것들은 살과 피를 가진 존재, 즉 독자를 찾아 그 온기와 생명으로 제 배를 불리고자 미친 듯이 군중 속을 헤매어 다닙니다.
읽혀지지 않는 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반만 존재한다고 해야할까요, 그것은 잠재적인 사물입니다. 마치 연주되지 않은 음악의 악보와 같습니다. (「마가진 리테레르」, 1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