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는 의지가 강인하고 마음이 굳세며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원나라에 끌려가 고려여인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나라의 황후가 된 인물입니다. 아들 애유식리달렵을 황제로 앉히고 고려 여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한시도 자신이 고려 사람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원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은 나라였습니다. 기황후는 고려를 원나라의 한 성에 편입시키자는 요구를 없앴고 원나라에 바치는 공녀제도도 폐지했습니다. 기황후는 서역, 로마에 이르는 실크로드을 직접 관장하고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던 참으로 기상이 높은 고려 여인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장악하고 비단길과 해상무역을 부흥시킨 기황후는 끝없는 유목민의 기상과 변화의 물결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킨 인물입니다. 중국 역사서는 한족 중심의 역사관 때문에 기황후의 위대함이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서에도 초원의 새로운 시대를 미리 내다보았던 놀라운 안목과 뛰어난 활약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기도하는 마음이 컸던 기황후에 대한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기황후께서 문득 꿈에 나타나실 듯합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지는 않을까요?
한 번도 용기를 잃은 적이 없다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고(故) 제성욱 작가의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를 바탕으로 하여 ‘몽골의 역사’(강톨가 외), 원사, 후비열전, 명사, 고려사, 신(新)원사(북원사기) ‘팍스 몽골리카와 고려’(보르지기다이 에르데니), ‘13-14세기 고려 몽골 관계 탐구’(동북아역사재단), ‘이야기 고려왕조실록’(한국사 인물연구원)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자료를 제공해 주고 출간해 준 일송북 출판사의 천봉재 사장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만 나는 동학혁명 때 맑은 창자처럼 살았으며 무덤도 없이 스러져간 30만 명이 넘는 조선의 사람들을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저 <구운몽>의 성진을 통해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미미하게나마 위로하고 싶었다. 허나 천성이 스스로 천박하고, 게으르고, 애절하지 못하여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사서와 삼경의 기운을 빌리고, 온갖 기서를 기웃거려 그래도 아주 작은 지혜나마 구하고자 했으나 그 막막함에 내내 손을 놓아 버렸다가, 문득 글을 마치고 붉은 꽃잎 같은 두 손을 공중으로 내민다.
세상 속으로 한 발씩 걸어가면 태양처럼 슬픔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는 꽃이 터져나듯 달아나는 그리움을 이정표 삼아 쌍봉낙타처럼 걸어갔습니다. 그곳이 사막이든, 초원이든, 눈 내리는 얼음길이든. 세상 깊이 걸어갔습니다.
너무 세상이 깊어서 스스로마저 보이지 않을 때에는 바다로 뛰어드는 강물에 물어보고 산으로 달려드는 눈보라에 물어보고 등이 굽은 제 그림자에 물어보며 혼자 시를 쓰고, 혼자 기억의 서랍에서 푸른 꿈처럼 꺼내어 보곤 했습니다. 멋모르던 스무 살 때부터 드높게 살고 싶은 날들과 용기를 품고 떠난 날들이 고스란히 자라서 여기 나무처럼 서 있습니다.
푸른 꿈의 상처를 온몸으로 품어서
어느 날, 보석처럼 빛나기를 기다리는
당신에게 이 시집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