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률 출판사의 청탁에 의하여 육필시집 간행에 응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50여 편의 시를 육필로 쓴다는 게 부담이 되었지만 색다른 출판에 흥미를 느껴 선뜻 응하였다. 달필도, 명필도 아닌 터 인쇄만 믿고 악필로 일관한 일상의 버릇이라 정연치 못한 필체에 스스로 불만인 채 졸필 그대로 내보내기로 하였다.
23권의 시집을 간행하여 편수는 제법 많지만 과연 대표작이 될 만한 시가 있는가,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면서 우선 독자들이 좋아하는 대중성과 내 자신이 아끼는 작품 순으로 편수를 채웠다. 현란한 매체가 문학의 독자를 많이 빼앗아 갔고, IMF 경제 망국 이후 문학이나 문화 전반의 기류가 돈 되는 것이 문화라고 정의하며 시장논리 부가가치를 따지는 시대여서 현히 시인들은 탤런트 사진 한 장만도 못한 시집 발간에 개탄해 마지않는 터이다. 문학 살아남기, 시 살아남기를 위한 새로운 문학의 부흥 르네상스가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금번 나의 육필시는 1959년 초기부터 발표순으로 뽑아 발표연대와 수록시집을 명기하였다.
70년대의 유신 치하 5·18 이후의 군사 정권, 순탄치 못한 시대 속에서 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특별하기 위하여 풍자나 굴절 작용이 불가피했지만, 시의 본질인 서정의 맑은 샘물을 잃지 않으려 애써왔다.
<꽃씨>나 <호수> 같은 작품에서 <직녀에게>, <땅의 연가>, <아버지의 귀로> 등 주로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우선순위로 묶어 보았다.
“그의 시들은 향토에 밀착된 우렁차고도 뜨거운 가슴의 폭을 지녔으되, 바다를 향해 조용히 흘러가는 산골 개울물의 서늘함 같은 맑은 서정도 지니고 있었다.”
1981년 간행되어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판금당해 있었던 창비시선 26권 《땅의 연가》에 대한 단평 소개 글이다. 그날로부터 35년이 흘러 나는 이미 80대에 접어들었다. 세상도 변하고 시도 변하고 세기도 바뀌어 너무나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에 실린 시들과 중복을 피하고 이미 간행한 여러 시집에서 묻혀있는 시들을 골라 역순으로 배열하였다. 그동안 나의 안부가 궁금했던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낭송가들 애독자들 나의 제자들이 좋아하는 시들에 중점을 두어 골랐다.
193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서구의 난해시들 독자들과 괴리가 생긴 그런 낯선 시보다 이 땅의 민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되고 우리 민족의 고난을 헤쳐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민중시 범주 내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뚜렷한 그런 작품이길 염원하였다. 이미 친숙한 〈직녀에게〉 〈꽃씨〉 〈호수〉 그런 시들과 더불어 묵혀있던 나의 졸시들이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들기 바란다.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슬슬 넘긴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