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은 여름날 오후에 나는 들판 한가운데 누워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합니다. 꼼짝 않고 누워 있다 보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하나 둘 줄지어 내 옆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부드러운 바위인 줄 알고 안심하는가 봅니다.
개미들은 내 블라우스 위에다 길을 만들고 자벌레는 치마폭을 재고, 배추흰나비가 무릎에 앉아 날개를 쉬기도 합니다. 그래도 계속 움직이지 않고 상냥한 바위인 척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옵니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과 풀 냄새, 산들바람의 속삭임이 내가 누워 있는 들판 위를 이리저리 지나갑니다.
그러면 주위에서 벌레들이 소곤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만약 내가 정말 바위가 된다면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저녁에 해가 저물 때까지 그리고 한밤중까지 벌레들이 하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커다란 숲이 있습니다. 숲 속 깊은 곳에는 산이 우뚝 솟아 있고 넓고 아름다운 호수도 펼쳐져 있습니다. 물은 호수에서 강으로 흘러 나가고, 숲 속에 사는 동물들은 그 강가로 물을 마시러 찾아오곤 합니다.
숲 속을 혼자서 조용히 거닐다 보면 여러 가지 소리와 냄새, 기척이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합니다. 바람의 속삭임, 잔물결이 부르는 노래, 비 냄새, 덤불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 이런 것들은 모두 내게 신기한 이야기를 살며시 가르쳐 줍니다.
나는 이 책에서 내가 느낀 숲 이야기 아홉 가지를 적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숲은 더욱 멋진 이야기를 감추어 놓고 누군가가 찾아내 들려주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 친구들도 찾으러 가 보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