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삼국유사 해제 책과 가장 큰 차별성을 든다면?
굳이 차별성을 말하라면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겠다는 생각을 집어 던졌다는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나대로 삼국유사’인 셈입니다. 제가 읽으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 읽으면서도 이건 왜 이렇지, 저건 또 왜 저럴까 의심이 들었던 이야기,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해답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들을 제 나름대로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약 현대인이 신화를 짓는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의 본문에서도 썼지만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를 충실히 소화하고, 또 대학교수님들이 쓰신 논문들도 참고하여 해석하였습니다.
이렇게 책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저자로 알려진 일연 스님도 당시에 남아 있던 삼국시대에 관한 책들을 많이 참고하였지만, 시골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도 많이 적어 넣었습니다. 즉 근엄한 책의 세계와 생생한 삶의 세계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삼국유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를 읽을 때에도 메마른 사실들을 적은 역사책으로만 대하지 말고 온갖 상상들이 시끌벅적 뛰노는 자유로운 상상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 '역사'로 볼 때와 '신화'로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무얼까요?
저는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의 작품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였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실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요지의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 거겠지요. 신화로 대하면서 삼국유사를 읽으면 옛날 사람들의 꿈꾸던 것, 바라던 것, 싫어하던 것, 좋아하던 것, 이런 것들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과 신화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겠지요. 신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상처받은 마음에 붕대를 감아 주고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때로는 의기소침한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 옛사람들과 현대 사람들의 사고가 다르다면 가장 큰 것은, 또 그 이유는 무얼까요?
인간과 자연,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고대인들을 이상화한다는 핀잔을 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옛날 사람들이 자연을 더 경건하게 바라보고,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겸손한 자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연은 개발의 대상, 가축은 마음껏 부리거나 잡아먹는 존재로 보지요. 그러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서서히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고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과거의 어떤 시점에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인지, 아니면 서서히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강제인지, 내부에서 생겨난 변화인지도 모호합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매우 오만해졌고, 밀어붙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세상의 주인인양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고대인과 현대인이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런 낱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현대인의 문화적 유전자 속에도 고대인의 사유가 잠재된 형태로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여 활개를 칠지도 모르지요.
* 세계 신화, 혹은 다른 시대의 문학작품, 또 현대와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러고자 한 이유가 있다면?
삼국유사라고 삼국시대의 이야기로만 가두어 놓고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같은 인류라는 공통점에서 나오는 유사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굳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파된 흔적이라고만 볼 필요도 없겠지요. 사실 이런 것은 증명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라고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요. 다만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엉뚱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엉뚱한 자리에 함께 붙여놓고 자기네들끼리 아우성치게 만들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특별한 이야기가 튀어 나올 수도 있답니다. 게다가 오늘날이라고 해서 옛 이야기의 흔적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이야기 그리고 저 멀리 서양의 이야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란히 놓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 자신은 오늘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 없이 차별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정글의 법칙에 목을 매는 학교 교육, 몸에 칼을 대서라도 예뻐지고 싶은 사람들, 죽어버리면 다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벌어지는 슬픈 소식,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자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더군요.
* 십대들에게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저도 흔히 말하는 ‘고전’을 읽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읽고 나서도 무언가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는 느낌보다는 이 어려운 것을 읽어 치웠다는 생각이 먼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철학을 공부하는 제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 친구는 아무리 어려운 철학 고전도 소설책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답니다. 소설책을 다 암기하면서 읽지는 않죠? 읽다가 모르면 넘어가고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읽지요. 고전 읽기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라도 소설책 읽듯이 읽는 것이지요. 몇 년 뒤에 다시 읽게 되면 예전에는 눈이 가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온답니다. 그리고 또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읽을 때에는 옛날에 이러저러하게 이해했던 대목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요.
고전을 읽을 때 누구나 자기 수준과 처지에서 가장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런 독서가 사유를 풍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권하는 독서법은 어렵건 쉽건 가리지 말고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술통 속에서 거품이 일듯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온갖 이야기들이 발효되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새로운 신경회로들, 독창적인 사고들, 이런 것들이 분출되지 않을까요? - 저자의 말 - 지상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