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들과 각기 다른 생각이 모이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다원화 사회에서 한데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당연히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충돌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복지국가의 이상으로 여기는 북유럽 국가의 환상을 꿈꾸면서도 그 제도에 녹아있는 사실을 꺼내려 하면 지긋 지긋한 색깔 논쟁으로 번지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제 충분히 다원화 된 사회에서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구별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반대를 위한 반대와 갈라치기를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특정 집단과 소수일 뿐이며 그 안에서 신음하고 고통을 받는 것은 절대 다수라는 것을 이미 우리 사회는 충분히 경험하였다. 이념의 가치 충돌로 인해 보낸 아픔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을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서 픽션으로 그린 작품이 ‘비상구는 닫힌 적이 없다’이다. 갈등을 유발하고 고정된 선입견을 만들어 세상을 흑과 백으로 나누는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강한 콘트라스트 대비와 푸른 톤과 붉은 색의 배치 그리고 차가운 ‘공기의 밀도’를 통해 전체적인 시각적 균형을 잡았다. 특히 3D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 내부를 흐르는 대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가장 염두해두었는데 천장의 빈틈을 통해 스며두는 빛으로 인해 실내에 ‘서늘한 밤의 대기’가 꽉차있는 공간을 구현할 수 있었다. 원형계단은 뱀이 또아리를 튼 듯한 모습과 구조적 아름다움이라는 이중성으로 제단의 상징을 부여하였고 리더와 군중은 완장과 두상의 못(무기)만으로 구별하여 주체적 생각을 가지진 못한 ‘텅빈 인간(Hollow Men)’이라는 메타포로 와이어 자체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