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한 시절의 영사기를 되돌려 보면
동화 속 신데렐라를 만났던가 싶다.
나는 유리 구두를 신겨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내가 아니었던가.
깊은 밤 자정의 종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사라진 여자!
얼마 전 작고하신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손 닿지 않던 벽장 구석
내 젊은 날의 유물을 발견했다.
아버지의 외로운 그림자와 함께
활활 소각시켜 버리려 했던 아린 상처들!
먼 시간에서 당긴 상처의 흔적은
싱그런 오늘로 포물선을 그었다.
그녀와 나눈 수많은 편지글과 시편들
내가 던지면 잔잔한 물이랑으로 받아내던
쌉쌀하게 감도는 잉크 냄새
극지의 크레바스처럼 차고 깊어
비밀하게 준비한 유리 구두를
차마 내밀 수 없었던 여자
내 가슴에 수만 개의 타르초로 나부끼다
애린으로 남은 오늘의 LH
이제서야 더 붉은 속울음으로 타오르는
무거운 돌무덤을 헤집어본다.
2018년 가을날
강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