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글이란 어떠한 글인가. 다행히 좋은 글은 이러이러한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 즉, 좋은 글로부터 그것과 다른 글이면서 그것만큼이나 좋은 글을 쓰는 일반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가. 역시 가능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는 일반적인 방법을 가르치면 누구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
<글쓰기와 글쓰기교육>은 이와 같은 일련의 질문에 대하여 그 나름의 답변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 답변은 때로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이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분명하고 때로는 모호하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또렷하게 밝히고 있다.
즉,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면 차라리 글을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좋은 글을 쓰도록 가르칠 수 없다면 차라리 글을 쓰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어린이시를 보면 어린이가 보입니다. 시 속의 어린이는 전혀 까탈스럽지 않아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가 친구한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 독자가 어린이시를 읽는 것은 마음 맞는 친구와 속닥거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 속의 어린이는 어른 독자한테도도 스스럼이 없습니다. 낯가림도 없고 머뭇거림도 없고 얼버무림도 없습니다. 현실의 어린이가 현실의 어른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몰라요.’와 ‘그냥요.’라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알고 싶다면 어린이시를 읽으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어른 독자의 어린이시 읽기는 곧 어린이 읽기입니다.
‘시를 보면 아이가 보인다’, 이것은 어린이시교육연구회의 월회보 《어린이시》의 한 꼭지 이름입니다. 그 뜻은 어린이시를 읽으면 그 시를 쓴 어린이를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데 어린이시를 보면 어린이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와 그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도 함께 알게 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어린이 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도 더불어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