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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천운영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1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한양대 신방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데뷔작
2000년 <바늘>

최근작
2024년 6월 <후이늠 Houyhnhnm : 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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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이번만은 아무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겠다. 안부를 묻지도 않겠다. 근황을 알리지도 않겠다. 나는 그립지도 밉지도 미안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수식어를 잊는다. 주어와 목적어와 서술어만 생각한다. 명사와 동사만 생각한다. 형용사와 부사와 감탄사를 잊는다. '내가 소설을 쓴다.' 이것이 완전한 문장이다. 이것만이 완벽한 조합이고 유일한 선택이다. 가끔 서술어가 헷갈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주어나 목적어까지 방향을 잃었다. 내 완전식품, 완전문장. '내가 소설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안하겠다. 겸손하지도 잰 척하지도 눈치보지도 않겠다. 과장하지도 감추지도 설명하지도 않겠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다. 그대들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 '내가 소설을 쓴다.'를 가능하게 만드는 그대들. 성분을 잊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세상의 모든 그대들. 그대들 생각하니 자꾸 감사하고 싶어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그런 '내가 소설을 쓴다.' 그래서 이번만은 아무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는다.

명랑

어쩌면 내가 쓰는 소설이 아주 작은 살구씨를 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겪는 산고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 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양분을 흡수하고 가슴을 부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꾸물꾸물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어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넓히는 나무 한 그루를 내 속에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리하여 단 한 사람에게라도 새콤한 살구 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되지 않을까? 나는 단단한 껍데기가 열리고 싹을 틔우는, 내 몸에 자리잡은, 하나의 살구씨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깥으로 내보이기 위해 거쳐야 할 고통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반에 반의 반

엄마는 요즘 외출을 할 때면 꼭 이렇게 말한다. 오늘이 제일 젊고 제일 예쁘고 제일 싱싱한 날이니 재미지게 놀다 와야지.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어찌나 서러운지. 기록해두어야 했다. 오늘 제일 생생한 엄마의 기억들을. 그 몸에 쌓여온 무늬들을. 언젠가 당신이 기억해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언젠가 당신 얘기를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대신 기억하고 들려줄 수 있게. 엄마의 이름은 명자다. 중학교 때 단짝 친구 어머니 이름도 명자였다. 우리는 그래서 더 빨리 각별해졌다. 반이 바뀌어도 명자라는 이름의 엄마를 둔 아이 한둘은 꼭 있었다. 성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명자. 성격도 환경도 내력도 다르지만 우리 모두 명자씨의 자식들. 미자 화자 영자 정자 경자 옥자 숙자 그 세대의 흔한 자식 ‘자’자 이름까지 다 불러모아 명자씨. 명자씨는 어머니와 같은 단어. 그렇게 명자씨는 태어났다. 그리해서라도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 어머니의 엄마가. 다음 생이 아니라 지금 생에.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나는 명자씨를 낳고, 그렇게 서로의 자식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엄마도 아시다시피

다행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엄마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손톱만큼이나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어서 내 몸에 도는 피와 살과 뼈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기형인 나를 원망하지 않고 겸손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되어서. 이렇게 조금씩 더 알아가고 더 겸손해지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서. 그것이 소설 쓰는 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써야 하는 명백한 한 가지 이유가 되어서.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잘 가라, 서커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사랑했다.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했다.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사랑을 받았다. 해화의 사랑을, 발해의 사랑을, 바다의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내 옆에서 숨쉬고 내 등을 쓰다듬고 내 젖은 눈을 보았다. 사랑을 받았지만 내가 사랑을 주기는 했는지 자신할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가차없이 물 속에 빠뜨렸다. 위안을 주고 싶었는데,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내 사랑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내 어깨를 감싸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위안이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해준 이들의 이야기이므로.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도 따뜻하졌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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