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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국내저자 > 번역

이름:송태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4년 11월 <리버 2>

금수

이 소설은 환상을 잃어 가고 그 자리에 현실이 들어오는 과정을 담았다. 그것은 바로 독자가 이 소설, 또는 아키와 아리마의 관계에 대한 환상을 잃어 가고 그들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키에게 아리마가 특별한 사람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듯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특별한 느낌에서 평범한 느낌으로 변해 간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고 사랑이다. 추억의 자리, 즉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려는 안간힘을 담은 이 편지들은 달뜬 연애편지보다 차분해서 서글프고 애달프다. 사랑을 얻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추억의 자리로 돌리기 위한 안간힘의 표현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도련님

동화는 아닌데 동화처럼 읽힌다. 학교 선생님들 이야기인데 마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 모략을 꾸미는 교감 선생님이나 골동품을 강매하는 하숙집 아저씨 같은 이상한 어른들도 우스꽝스러울 뿐 그다지 밉지가 않다.

독학

분명하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일단 비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늘 애매하게 말꼬리를 흐리며 공격받지 않으려는 사람보다는. 그런 점에서 나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라도 이런 태도로 말한다면 나는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이나 명저에 대한 생각이나 외국어 학습법에 대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책은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며 지(知)의 세계를 넓혀가기를 권하는 책이다. 자신의 판단을 명저에, 유명인에게 맡기지 말고 자신이 직접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손에 든 적이 없는, 조금 어려워 보이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야 자신이 바뀔 수 있다고. 그러면서 여러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마음

사모님은, 선생님이 K를 이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만 게 아닐까. K가 자살하자 선생님은 영원히 자신의 승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사모님이 옆에 있는 한 선생님의 마음은 K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선생님은 사모님을 버릴 수도 없다.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K를 속이면서까지 결혼했다는 자신의 정당성까지 버려야 할 테니까. K에게 감정이입하여 읽으면 선생님의 또 다른 마음이 보인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가 밀라노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서유럽은 역사상 인간 정신이 가장 고상하게 발현된 시기였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신분, 학력, 피부색, 국적, 나이, 빈부 너머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 목소리, 마음에 직접 가닿는다. 사람을 그야말로 사람으로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잊게 한다.

바이바이, 엔젤

평범한 미스터리의 경우, 범인을 체포하고 범행 동기를 알면 독자는 그것으로 납득한다. 수수께끼가 풀리면 거기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사이 기요시의 소설은 그 뒤에 다시 생각거리를 남겨둔다. 트릭에 놀랄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미스터리인 셈이다. 하지만 야부키 가케루의 현상학적 논의나 작중에 그려지는 사상적인 진술에 다소 무거움을 느낀다고 해도 머리 없는 시체의 수수께끼와 이어지는 밀실 상태에서의 폭사와 관련된 트릭을 푸는 것,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 야부키 가케루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라바 1

요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일본 버블 경제의 산물이라면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는 버블이 붕괴하고 도래한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새로운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사라바 2

요컨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일본 버블 경제의 산물이라면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는 버블이 붕괴하고 도래한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새로운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산시로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하는 산시로는 고향 구마모토를 떠나 도쿄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에서 만난 여자와 여관에서 하룻밤을 ‘그냥’ 보내고 나온 산시로는 그녀에게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 한마디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그를 붙들고 도무지 놓아주질 않는다.

소리의 자본주의

1920년대까지 '소리'의 변용에서 자본주의는 결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 경우 소리문화를 변화시키는 외적 요인으로서 자본주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리'의 변용 자체에 자본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본주의란 결국 '소리'라는 인간의 신체성/관계성의 구조적 변용 안에 존립하는 시스템이며, 적어도 18세기 말가지 음향 복제 미디어의 등장과 소리문화의 변용은 산업혁명이나 자본주의의 결과라기보다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계기였다는 것이다. - 송태욱(옮긴이)

오천 번의 생사

미야모토 테루는 단편일 때 더 그답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번역을 마치고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두커니 강물을 보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시야에 들어온 거리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초점을 맺지 못한, 조금은 선해진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조차 끼어들지 못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그립다가 쓸쓸해졌다. 늙어간다는 것은 뭔가를 잃어가는 일이다. 아니, 잃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려면 물기가 줄어들어야 하고 투박해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화가 잦아진다. 시간은 항상 처음 맞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인지. (…) 특별히 한 인물을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않고, 백 년 이상에 걸쳐 여러 삶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폭력과 끔찍한 고통의 질병, 죽음도 멀리서 보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일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어간다. 그런데도 먼 풍경처럼 아름답다. 아니, 풍경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네의 스승은 “산파는 그냥 혼자 낳는 사람 옆에 있으며 시기가 될 때를 기다리는 게 일이다. 타인의 참견, 자, 힘내, 하는 간섭이야말로 안산의 큰 적이다”라고 말한다. 가족 사이의 거리도 산파와 산모 사이의 거리여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읽고 나서 얼마쯤 시간이 지나 줄거리가 어렴풋해지고 인물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며 분위기만 기억에 남을 때쯤 아련한 과거처럼 불쑥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내게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이 그랬다. 아직도 그 첫머리의 나른한 일상이 불쑥불쑥 영상으로 다가들곤 한다. 내게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도 그런 작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어가는 작품. 참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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