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국어 교과서와 국가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것은 교과서를 규율하는 근본원리의 하나가 '국가주의'라는 데 있다. 교육이 국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이자 동시에 재생산의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 정도와 양상이 다른 나라보다는 한층 심각하고 전면적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의 내용이 바뀐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데올로기를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교육의 근본이념으로 활용해 오기도 하였다.
종잇장 위의 활자로 시를 읽는 것과 시인이 그리워하던 흙과 바다와 고향의 뒷산을 직접 가 보는 것은 그 감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문학이란 무릇 사람이 낳는 것, 작품을 논리화하는 일도 중요하나 그 작품을 낳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 또한 중요하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이 쌓이면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여기 수록된 글에는 문학을 체험으로 알려준 계기와 순간들이 담겨 있다. -
■ 서문에서
한나 아렌트(Hanna Arendt)의 고백을 빌리자면, 우리는 이성과 진보를 얘기한다는 것이 위선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서 문학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하게 된다. 어떤 의미를 규정하기 이전에 무력감 또는 위기감 그리고 참혹함과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 실존을 헤쳐가고 있는 게 문학하는 사람의 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