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새벽 ...
오래도록 '희망'이란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그건 내 안에 없는 언어였다. 사람들은 유행처럼 너무도 쉽게 그런 말들을 떠올렸는데, 도무지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억지로 입안에 밀어 넣은 말들은 모래알처럼 서걱거렸고, 번쩍거리는 희망이나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 앞에 나는 점점 작아졌다. 결핍이나 소외는 언제나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제일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나는 외롭다고 느끼기보다는 평화롭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의 마지막을 선고받은 사람과, 경계 너머로 밀쳐진 사람과, 한 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어쩌면 그러한 고립 속 나 자신의 파편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들을 억지로 일으키지 않고, 물끄러미 그들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것은 그대로 주저앉은 나를 들여다보는 응시(凝視)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가르치거나,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빛'을 가리키지 않았던 것은 내 안에 그런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는 웃고 있었다.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을 그리며, 그들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제야 햇살이 드는 쪽을 바라보았다. 희망이란, 거기 환하고 밝은 곳이 아니라, 여기 어둡고 축축한 곳인지도 모르겠구나. 가장 끔찍한 곳을 들여다보며 어스름 새어드는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일이, 참으로 내게 절실했던 바로 그것이었구나. 그건 납작하게 깔려있던 삶을 슬쩍 들어 올리는 참으로 고귀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아직도 '희망'이라는 말을 모른다.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높여 '희망'을 외치거나, 환한 빛을 가리키며 '거기'라고 말할 자신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내가 숨어들었던 그 어둠 속을, 그들이 지나가고 있는 절망들을, 그럼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나와 그들의 발걸음들을.
사람들에게 소외되었던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나오게 해 준, 도서출판 가쎄의 김남지 님께 감사를 전한다. 자칫 우울하게만 읽힐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의, 그 어떤 밝음보다 더 환한 진심을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또한 이번에도 역시 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내 짝지, 박조건형 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직장을 다니는 바쁜 중에도, '영업이사'를 자처하며 부끄러운 내 원고의 산파 역할을 하는 그에게 사랑보다 더 커다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름없는 소설가로서, 또 한 권의 책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내 삶을 일으키는 것이기도 했지만, 또한 여러분 모두의 삶을 일으키는 소중한 선물이기를 바란다.
2012년 가을 남쪽에서 김비
아직도 남자의 호적을 가지고 있기에, 내 응모 자격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깟 서류에 기재된 숫자 몇 개로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내가 보낸 작품으로 나를 인정하고 심사 대상에 포함시켜주신 모든 심사위원과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여자로 태어나지 못한 어느 여자의 꿈과 절망과 작은 승리에 관한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하응백 선생님, 한수산 선생님께도 허리를 깊숙이 숙여 무한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끼니를 걱정하며 가장 가깝게 내 곁에서 나를 지탱해준 '잠자는 예술가'인 내 큰오빠, 김병은, 그리고 자식의 등단을 '횡재'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 엄마에게도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