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문헌에서 안식일은 신부나 여왕처럼 사랑을 받는다.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완전을 향한 갈망이 있으며, 우리 문화에 산재한 온갖 종류의 매춘부들은 이러한 갈망을 만족시키려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거룩한 시간만이 우리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우리가 신부를 사랑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안식일 지키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함께 자라갈 때, 안식일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리하여 우주의 왕이신 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 서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행복했던 기억은 예배와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는 오르간 연주자이셨고 찬양대의 지휘자이셨기에 우리 가족은 회중들의 예배 속에 항상 함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늘 예배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토요일 밤이면 목욕 후에 머리를 단정히 손질했었고, 주일 아침을 위해 항상 최선의 옷을 준비해 두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는 대강절과 사순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작곡한 새로운 작품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오르간을 연습하고 매 주마다 찬양대의 리허설을 지도하면서 기뻐하셨다.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율의 순간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 연습했던 것을 연주한 것인데, 예배가 끝나는 부분에서 오르간의 마지막 페달을 내가 밟았을 때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아버지가 새로운 작품의 작사를 도와달라고 처음으로 내게 제안했던 순간의 기쁨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기억 속의 예배는 늘 영광스러운 광경과 소리로 채워져 있다. 우리 교회건물 안에는 정교하게 깎아서 만든 제단,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고대 기독교의 상징들, 성경에 담긴 전체의 이야기를 기억나게 해 주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것 뿐 아니라 오래된 모든 종류의 음악을 노래했는데 가끔은 관악기와 혹은 플루트를 연주하는 여러 학생들과도 불렀다. 내가 어린 시절에 예배 안에서 보고 들었던 것은 나의 믿음을 세워주었고 모든 마음과 생각, 목소리와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 황홀한 갈망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예배를 사랑했다! 특별히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주 찬송가를 암기했는데 그것은 루터란 학교에서 암기를 위한 과제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루터란 학교에서 비서였으며, 아버지는 교장이셨고 두 분은 내가 4학년과 8학년 때의 선생님이셨다. 내가 조간신문을 돌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에 목청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며 다녀서인지 구독자들은 내 목소리 때문에 신문이 언제 도착하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예배를 사랑한다. 수년간 찬양대와 포크(Folk) 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지도했으며 다양한 악기도 연주하고 좀 더 최근에는 예배를 위해 설교를 했다. 내가 대학 3학년이었을 때는 전 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하는 합창단에도 참여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여러 나라에서 가르쳤고 거기서 예배 안에 쓰일 수 있는 다양함과 부요함을 경험했다.
이렇게 값진 글로벌한 예배의 배경을 가진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관해 싸우면서 서로 깊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보았다. 이런 불화들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갖지만, 대부분 음악적인 스타일이나 서로 다른 취향에 대한 치열한 분쟁으로 불이 붙는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서, 나는 사람들이 더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돕고, 논쟁의 뿌리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하나님의 갈망에 대한 통찰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자 그러면 몇 가지 질문을 해보자. 예를 들어,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는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한 우리의 기쁜 응답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 시작하자. 모든 삶은 예배이다. 우리가 감사함과 존경 안에서 살며, 하나님에 대한 참 마음과 그분을 섬기려는 열망을 가지고 산다면 그 모든 삶은 예배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