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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기억 속에 시가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 있는가를 보려면 우리, 이 시집을 읽자. 많고 많은 시들 중에서 어떤 것들만 유독 마음을 오랫동안 가리우는지, 왜 이 시들은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고 싶다면 말이다.
시가 차지한 자리보다 여백이 훨씬 더 많은 책에 대해서 이처럼 관대해 질 수 있는 건 김용택 시인의 시평 때문이다.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원고를 모은 것이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탄력이 떨어지고 엉성한 체계이기는 하나, 시집 뒷표지에 붙은 '추천사'와 달리 진솔하고 따뜻한 시감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매력적이다.
어떤 평은 그저 밋밋하고 계도적인데 반해 또 어떤 평들은 새삼 시가 다시 읽힐 정도로 쫀득쫀득하다. 가끔 읽다가 좋은 시를 만나면 필사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읽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한 글자씩 종이위로 올려질 때면 번지수에 맞게 마음 속을 찾아들 것이므로.
그렇게 시와 마주한 시간에 살짝 곁자리에 다가와 앉는 이가 이 사람, 김용택 시인이다. '좋지, 좋아!' 이렇게 흥을 돋구고 넌출넌출 시를 뽑아 새 페이지에 놓아주는 이도 바로 이이다. 꼭 수저 위에 반찬을 올려놓아 주듯이, 둥그런 밥상을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듯이, 그렇게......
그러다 보면 황지우 시인의 그 오만하고 당당한 위용이, 김수영(金秀映) 시인의 봄눈처럼 살살 녹아 내리는 시가 자꾸만 발목을 끌어당겨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다. 그럴만도 한 것이 한번에 쑥! 내리읽기에는 아직도 남은 게 많다며 앞장서는 손가락을 그이들이 자꾸만 붙들기 때문이다. - 최성혜(200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