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땅이 초원으로 펼쳐져 있는 나라, 몽골에서는 초원의 나라답게 유목 생활을 해 왔다. 이곳은 여름엔 일교차가 크고 겨울엔 매서운 추위가 휘몰아치는 대륙성 기후. 이런 조건을 모두 담아낸 집이 바로 버드나무 가지와 양털로 짠 하얀 천, 그리고 짐승털 밧줄로 만든 집, 게르(Ger)다. 멀찍이 떨어져 보면 꼭 하얀색 텐트같이 생겼다.’
나는 백과사전에 있는 게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어요. 게르는 대여섯 개의 긴 버드나무 가지에 양털로 짠 천, 또 낙타 꼬리털로 만든 밧줄만 있으면 세 사람이 30분 만에 뚝딱 지을 수 있는 집이래요. 20분이면 허물 수도 있다는 말이 더 신기했어요. 짓기도 쉽고 허물기도 쉬운, 그야말로 내가 꿈꾸는 집이에요.
주인아주머니가 방을 빼라고 독촉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어요. 처음에는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말하던 아주머니도 나중에는 신경질을 팍팍 내며 얼른 나가라고 했어요. 엄마는 눈만 껌뻑껌뻑하며 대답을 못했어요. 어차피 엄마가 수화로 이야기해도 아주머니는 알아듣지 못할 테지만요.
나는 굳이 아주머니의 말을 엄마한테 전하지 않았어요. 아주머니의 시뻘게진 얼굴, 하늘이라도 찌를 듯 삿대질하는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간간이 튀어나와 여기저기에 달라붙는 허연 침들로 엄마도 무슨 말을 했는지 눈치챘을 테니까요.
우리나라의 집들이 게르라면 이렇게 이사 갈 곳을 찾지 못해 한숨을 내쉬는 일은 없을 텐데요.
‘왜 난 몽골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게르에 사는 몽골 아이들은 적어도 주인아주머니의 고함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적은 돈으로 이곳저곳 집 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잖아요. 사진 속에서 바람에 시달린 얼굴로 걱정 없이 웃고 있는 몽골 아이들이 못 견디게 부러웠어요.
아니, 달팽이마저 부러웠어요. 집을 지고 다니느라 무겁겠지만 그래도 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지금의 내 꼬락서니는 집도 없는 민달팽이의 모습 같았어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해가 내리쬐면 탈 듯이 달아오르는 민달팽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있던 나는 콧구멍에 힘을 팍 주고 허리를 꼿꼿이 폈어요.
“그래,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 이은솔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요. 엄마를 닮아 고운 얼굴을 물려받기도 했지만, 아빠를 닮아 화끈한 성격도 남에게 뒤지지 않아요.
마냥 앉아 한숨을 쉰다고 집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았어요. 돈은 모자라고 집은 없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 좋은 방법이 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가 생각해도 기막히게 좋은 방법이 생각났거든요. 바로 엄마를 결혼시키는 거예요.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간 우리 아빠는 집 대신 술을 좋아해서 이렇게 우리를 고생시키지만, 집도 있고 능력도 있는 새아빠와 엄마가 결혼하면 집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되는 거니까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제 집도 있고 능력도 있는 새아빠만 찾으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