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작가의 말
AM 8:50
1 적정 주가란 없다 1998 겨울~2000 봄
2 ‘개미핥기’의 예술 2007 봄~여름
3 피보나치는 말했다. 주가는 항상 ‘되돌림’ 된다고 2001 봄~2003 겨울
4 그들은그렇게주식피라미드를쌓아올렸다 2007 가을~2008 봄
5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2004 봄~겨울
6 그들은 그렇게 주식 피라미드를 무너뜨렸다 2008 봄~여름
7 테크니션과 아티스트 사이 1 2004 겨울~2005 봄
8 작전과 사랑은 폐곡선을 그린다 2008 여름~현재
9 테크니션과 아티스트 사이 2 2005 봄~2005 겨울
10 작전 랩소디 현재
PM 2:50
정철진
1970년대 초반 서울에서 태어났고 ‘X세대’란 이름으로 20대의 젊음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 워커힐호텔을 거쳐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9년간 기자란 직업으로 치열한 삶을 살다가, 이제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과거 신문기자 시절 증권부에서 5년간 주식, 펀드, 채권, 선물옵션 및 기타 파생 상품, 시황 재무 등의 분야를 전담했으며 매일경제TV(MBN)에서 ‘선물옵션이 좋다’, ‘머니 레볼루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6년 출간된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밖에 《목돈 만들기 적립식 펀드가 최고다》, 《돈 버는 주식투자》(공저) 등 주식 및 펀드 관련 재테크 서적도 집필했다. 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네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 한다.
작가의 말
지난 2007년 11월,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갔을 때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웨스트 엔드에서 뮤지컬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를 관람했다. 마지막 엔딩 부분에서 남자 주인공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했는데 그는 마지막 가사를 조금 바꿔 “낫씽 리얼리 매터스 투 유”라고 했었다. ‘미ME’대신 ‘유YOU’라고 한 것이다. 물론 이 명곡의 가사는 정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그 순간 내겐 “철진아, 대체 뭐가 문제니? 걱정하지 마. 재밌게 살아봐”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내 영혼의 자유로움을 찾을 수 있었다.
소설 《작전》이 조금씩 나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을 무렵 신문사 후배 중 한 명이 내게 “근데, 형 이거 왜 쓰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질문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냐는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도박판 같은 작전주 이야기를 통해 대체 어떤 작가 정신을 나타낼 수 있겠냐는 걱정이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는 출판업계 관계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재테크 분야에 좀 더 집중하지 왜 갑자기 뜬금없이 소설이냐는 우려 섞인 조언이 많았다. 졸저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대박에 고무된 배부른 사치로만 여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들에게 당당하게 해줄 말이 없었다. 위축된 목소리로 “우리나라에 주식 소설은 별로 없잖아, 그래서…”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누군가는 주식을 도박판이라고 하고, 절대로 해서는, 쳐다봐서도 안 되는 금기로 여기기도 한다. 반 토막 난 주식형 펀드 수익률에 가슴 아파하고, 다시는 주식투자 같은 건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결심도 한다. 하지만 시장이 다시 바닥을 다지고, 본격 반등을 시작하고, 그리고 뜨거운 열풍과 함께 지속적인 상승을 이어갈 때쯤 사람들은 참고 또 참다 결국 다시 ‘주식판’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잠깐의 단맛에 취해 있을 때쯤 시장은 가차 없이 하락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난 주식을 ‘온갖 사회 현상이 한데 집약된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거기엔 금리, 환율, 실적, 경제 성장율, 부동산, 인구 구조, 날씨, 정치, 건강, 자원, 기술 등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하나의 생물체처럼, 자신의 문법대로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을 묵묵히 풀어나간다. 주식투자 실패의 주범은 결코 주식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그 자체로 언제나 옳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작전주는 다르다. 작전주는 주식의 순수성을 악용해 투자자들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가는 에덴동산의 뱀 같은 녀석이다. 주식의 탈을 썼지만 그건 결코 주식이 아니다. 때론 탐욕을 부추기면서, 때론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엄청난 미련을 주면서, 또 때론 승부욕을 자극해 무모한 도전으로 이끌면서 사람들을 파멸의 숲 어딘가로 인도한다.
솔직히 말해 난 《작전》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자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런 의도가 얼마만큼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누군가를 붙잡고 인생 그렇게 쫄 필요 없다고, 우리가 위축되는 순간 원래 내 몫이었던 자유도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외치고 싶다. 이 작품에 있어 작전주가 나쁘다거나, 작전주 테크닉이 이렇다 저렇다는 것은 하나의 형식일 뿐이다. 정민재란 주인공을 만들면서 그리고 ‘뱀눈’ 이수호의 캐릭터를 완성해가면서 나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자기 인생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에 집중됐다.
그러나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식 소설이란 장르 문학이 갖는 약점이기도 했다. 분명 작업 테크닉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도 소설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새벽 난 운 좋게도 지난해 겨울 이국땅에서 만났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느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결말의 힌트도 그 순간 찾았다. 당초 작전주 되치기를 통해 수백억 원을 챙겨 카리브 해로 떠나는 민재의 모습을 결말로 그렸지만 이후 ‘작전’을 변경해 새로운 엔딩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결말만큼은 맘에 드는 편이다.
40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해온 주식처럼 작전주 역시 앞으로도 상당 기간 주식시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작전주의 유혹에 빠져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던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당당하게 판을 접어야 한다. 비단 작전주만이 아니다. 나를 붙잡고 있는 그 어떤 중독과 콤플렉스, 두려움, 열등감이 모두 그렇다. 어설프게 딸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 모든 걸 버리는 바로 그 순간 참 자유가 환하게 웃으며 찾아올 것이다.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장 먼저 매일경제신문사 선배와 후배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매경은 내 간결체 글쓰기의 터전이었다. 특히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내게 글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던 허연 선배와 거친 초고를 읽어줬던 후배 문수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초고부터 마지막 마무리 작업까지 함께해준 위즈덤하우스 최연순 편집장과 이진영 팀장에게도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초고에 있었던 ‘지리산 예수’ 캐릭터를 제외시킨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내게 이야기를 사랑하는 DNA를 물려주셨다.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동지인 아내 해경이와 앞으로 내 친구로 성장할 아들 준서, 그리고 태중에 있는 조이는 영원한 내 편이다. 생애 첫 번째 소설 작업으로 너무나 괴로워할 때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은 하와처럼, 어쩔 수 없이 작전주 세계로 들어온 민재처럼, 나도 항상 유혹과 작전에 빠져든다. 늘 그래왔다. 그렇게 희열을 느끼고, 또 그렇게 후회를, 좌절을 한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고, 또 다른 어느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내 삶이 마치 하나의 작전주 같기도 하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내 인생을 멋지게 작전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2008년 11월 11일
정철진by storyparadise
AM 8 : 50
설거지가 시작됐다. ‘청담’ 구미(조직)와 ‘연세86’ 구미는 일단 깔끔하게 털고 나왔다. 문제는 명동 쪽이다. 옛 명일증권 명동 지점 출신 사람들로 시작됐던 ‘명동증권’ 구미의 탈출이 쉽지 않다.
2만 5,000원대까지 올랐던 코스닥 상장사 ‘상진기업’ 주가는 물량을 터는 과정에서 어느덧 1만 원대로 내려앉았다. 그래도 작전은 매우 성공적이다. 작전 돌입 당시 주가는 2,020원으로 평균 매도 단가 2만 원으로만 계산해도 900% 정도의 수익을 챙겼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위험 없이 한탕 해먹고 빠질 수 있는 이른바 ‘대끼리’ 판이었다. M&A(인수합병), A&D(인수후개발) 테마나 CB(전환사채) 테크닉을 엮지 않고 그냥 한번 걸쭉하게 놀아보자는 서비스 게임이다. 하지만 매도 타이밍을 놓친 명동 구미 쪽에서 클레임을 걸고 나왔다. 청담 구미 리더인 민재의 핸드폰에 불이 난다. 명동 쪽 불만이 의외로 거세다.
“민재 씨, 그렇게 급하게 빠지면 어떡해? 우리도 좀 먹고살자. 한 번만 구해주라.”
명동증권 구미 리더인 찰리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자칫 하한가 행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든다.
“내가 분명 3만 원 보자고 했잖아. 왜 내 말 안 들어? 우리가 먼저 털고 나온 건 명동 식구들 때문이야. 쫀지포 섭외되면 연락할게. 기다려.”
민재는 민재대로 짜증이 난다. 자신이 짜놓은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다 당하고는 이제 와서 대놓고 항의를 하니 말이다.
민재는 이번 상진기업 작전의 설계자이면서 전 과정을 총 지휘하고 있는 에이스 ‘주포主砲(작전 총괄 책임자)’다. 나이 서른다섯, 대학 졸업 후 생명보험사에서 잠깐 일했고 2001년 M&A 부티크인 ‘캐논인베스트먼트’에 들어가면서 작전이란 걸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메인 트레이더를 맡았고 2005년 ‘세일H&Q’ 작전을 통해 정식 주포로 데뷔했다. 세일H&Q는 현재 ‘삼정퓨처스’라는 튼실한 회사로 성장했는데 이때부터 민재는 업계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릴 수 있었다.
2006년 이후 민재는 명동 전주들과 강남 사채업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작전맨 반열에 올랐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에다 수려한 외모와 강한 승부욕을 겸비한 그를 업계에서는 초특급 에이스로 평가하고 있다. 정교한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정확하게 맞춰 실행하면서도 돌발 변수를 물 흐르듯 떨쳐내는 민재 실력에 전주들은 무한의 신뢰를 보냈다.
그간 원톱, 또는 투톱으로 진행했던 수십여 건의 작전이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가 됐다는 사실도 민재에겐 강점이다. 증권거래소, 금융감독원, 검찰 등의 쓸데없는 관심을 받지 않고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주식 작전업계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피스톨 강’의 유일한 직속 제자란 점도 민재를 이 바닥의 최고 주포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작전 대상이 됐던 코스닥 상진기업은 직물 염색업을 주축으로 하는 자본금 200억 원의 중소기업으로 지난 1970년대엔 꽤 잘나가던 곳이다. 하지만 창업자 아들이 회사를 맡으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의류 수입에서 리조트 개발, 엔터테인먼트, 유전 개발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쑤셔대면서 정체불명의 회사가 되고 만 것이다.
민재가 처음 상진기업 2세인 윤택수 사장을 만났을 때 주가는 950~1,1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대주주 지분은 58% 정도. 그야말로 작전을 걸기에 딱 좋은 수준이었다.
작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부분은 대주주의 움직임이다. 기껏 노력해서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대주주가 갑자기 물량을 털어버리면 그야말로 죽 쑤어 개 주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계사들은 작전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지분 현황과 대주주 스타일에 대한 점검을 한다. 각서를 쓰기도 하고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협박도 한다. 그래도 대주주가 장난치는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눈앞에서 자기 회사 주가가 4배, 5배 뛰는데 이걸 그대로 두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껌 값 정도는 먹게 해주는 게 이쪽의 관례다.
상진기업 윤택수 사장은 씀씀이가 큰 편이었다. 여자 밝히고 도박 좋아하고 하여튼 전형적인 한심한 스타일의 중소기업 2세였다. 본인 성격 같았으면 벌써 프리미엄 받고 백도어(우회상장)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회사를 처분했겠지만 아직 창업주인 아버지가 살아 있어 그것만큼은 당분간 힘들 것이다.
“고마, 잘 되겠십니꺼? 생각보다 좀 걸리네요. 돈은 잘 입금되는 거 맞죠?”
명동증권 구미의 탈출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 민재에게 윤 사장의 재촉 전화가 걸려왔다. 느끼하면서도 음흉한 목소리. 그는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전화를 해 민재의 속을 긁어놓는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는 조건으로 민재가 윤 사장에게 주기로 한 금액은 5억 원이다. 당초 지난 2006년 10월 작전에 돌입하면서 늦어도 올 3월경엔 끝내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설거지 작업이 길어지고 있다. 벌써 4월도 다 갔다. 윤 사장 커미션 지급도 한 달 넘게 미뤄지고 있다.
“우리 쪽 한 팀이 못나와서요. 사장님, 근데 정보가 많이 샜네요. 이러면 곤란한데.”
“그래요? 정보가 많이 샜습니꺼? 지는 반년 동안 완전히 닥치고 있었는데요.”
대주주의 보유 물량은 금융감독원 지분 공시 규칙인 ‘5%룰’ 때문에 수시로 체크된다. 윤 사장 역시 자신의 지분을 늘리든 줄이든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음흉한 녀석이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았다는 걸 민재는 안다. 차명계좌를 통해 단타만 쳤어도 지금까지 몇 천만 원은 챙겼을 게 분명하다.
“하여튼 됐습니다. 2주 내로 캐시로 배달할게요.”
“아이고, 고맙습니더. 지는 쭉 닥치고 있을랍니다. 믿습니데이. 전화주이소.”
전화를 끊은 민재가 쫀지포 리스트를 살펴봤다. 설거지 작업은 역시 쫀지포가 제격이다. 청담 구미가 빠져나온 터라 굳이 판을 업그레이드할 필요도 없다.
민재는 문득 춘근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춘근이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도 궁금하다.
‘쫀지포’는 기존 ‘주포’에 비해 자금 성격이 매우 지저분하다. 요즘엔 조폭 자금까지 들어오면서 뒤끝도 많아졌다. 규모도 작다. 주포의 자금력이 300~400억 원 정도인데 반해 쫀지포는 50~80억 원 모으기도 버겁다. 그들은 큰돈 벌려는 생각도 없어 2,3개월에 40% 정도만 안겨주면 감지덕지한다. 입도 가벼워 몇 군데만 연락을 돌려도 개떼처럼 달려들면서 물을 흐려놓는다.
현 상황에서 1만 원대로 떨어진 상진기업 주가를 다시 2만 원 선으로 끌어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때쯤 명동증권 구미가 빠져나오면 될 것이다.
“춘근이 형, 오랜만. 민재예요. 지금 설거지 중인데 한 팀이 못 나왔어. 형, 좀 도와주라. 절대 깡통은 안 돼. 창업자도 살아 있고 나름 대끼리야. 형 온다고 하면 공시 좋은 걸로 두 개 정도 더 쏠게. 이제 겨우 하한가 네 번이야. 2만 원만 다시 뚫으면 전 고점도 제낄 수 있다고. 그때 형도 밟고 나와버리면 되잖아.”
논현동 쫀지포가 생각보다 손쉽게 섭외됐다. 춘근은 명일증권, 태산증권, 성화증권 등 세 개 계좌를 사용하고 매매 시간은 명동증권 구미와 메신저로 상의하기로 했다. 일단 장중에 주가를 올려보지만 실패할 경우 동시호가에서 만나게 된다. 1만 8,000원대에서 명동증권 구미가 먼저 빠져나오고 이후 논현동 쫀지포가 주도권을 잡고 판을 흔들기로 했다.
한숨 돌린 민재가 명동 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찰리, 쫀지 잡았어. 잘 끊고 나와. 그리고 나 막판 확인 사살은 못해. 밖에 좀 다녀오려고. 한 3개월 정도 연락 안 될지 몰라. 알겠지?”
피스톨 강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새벽 6시에 전라도 남원에서 택시를 대절해 타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출발한 지 네 시간도 안 돼 택시는 서울 태평로 삼정퓨처스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어떻게든 더 이상 민재가 이수호와 엮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다보면 민재도 분명 이수호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다.
‘피스톨 강’ 또는 ‘강 부장’으로 불리는 강영철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국내 자산운용업계 최고의 스타 펀드매니저였다. 명일투신 주식운용 본부장으로 재직해 있을 때는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시장 대비 30% 포인트 이상 웃도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피스톨 강이란 별명은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펀드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그의 운용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총잡이들이 권총집에서 빠르게 총을 뽑아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언론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작전 세력과 접촉하면서부터 강 부장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주식형 펀드 자금으로 작전 주식을 사주고 대가를 받는 연계매매를 하다가 오히려 세력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것이다. 회사에 사표를 낸 후 종적을 감췄다가 이후 1년 만에 작전맨으로 변신해 국내 증시에 다시 복귀했다.
이후 강 부장은 10년 가까이 작전업계 특급 에이스로 활동해왔다. 명동, 테헤란로 등 막강한 전주 및 부티크와 호흡을 맞추면서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 있는 수십 건의 작전주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2005년 세일H&Q 이후 홀연히 업계를 떠났다.
“아니, 강 부장님. 대체 이게 얼마 만입니까. 2년이 다 되갑니다. 햇수로는 3년이네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아침부터….”
능청스러운 인사와 달리 이수호 삼정퓨처스 전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재 건드리지 마.”
“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민재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냥 내버려둬. 당신이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은 지금 그대로 둬.”
“아, 답답합니다. 부장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파루 말이야, 파루. 모르겠어? 파루 주포로 민재 섭외 중이라면서. 그런 더러운 판에 끼워넣지 마.”
“부장님!”
순간 이수호는 뱀눈을 번뜩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간 저한테 존댓말 써왔다는 걸 아주 잊으셨나봅니다. 그리고 민재가 무슨 부장님 아들이라도 됩니까. 다 본인이 알아서 일하는 거죠. 그리고 더러운 판이라뇨? 작전맨 원로께서 그런 말씀하시니까 좀 그렇습니다. 흐흐흐.”
“이것 봐. 이수호 씨. 세일H&Q도 그랬고 파루도 똑같아. 작전은 작전으로 끝나야 하는 거야. 대통령 백 믿고 설치는 다단계 양아치 밑이나 닦아 주는 게 아니라고!”
강 부장도 물러서지 않고 몰아붙였다.
강 부장은 이수호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비열한 놈. 거짓말과 배신으로 자신을 완성해가는 놈.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짓밟으면서 존재감을 찾는 그런 놈이다. 이미 최상급의 실력을 자랑했던 강 부장 동료 여러 명도 이수호에게 희생됐다. 중간에 딴 주머니를 차기 위해서, 혹은 과거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자기 밑에서 일하던 기술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제거해왔다.
“그만, 그만하세요. 아니, 고작 돈 10억에 ‘웬 떡이냐’ 하고 제 발로 찾아왔던 게 누구셨더라. 그랬던 놈께서 지금 어디서 주제넘게 이래라저래라인가요?”
이수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끝에 걸려 있는 금테 안경을 추켜올리는 순간 다시 한 번 그 특유의 뱀눈이 희번덕거린다.
강 부장은 잠시 멈칫했다. 세일H&Q는 강 부장이 은퇴를 위해 선택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수호와의 계약도 주저 없이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강 부장은 민재를 만났다. 그리고 지금의 민재를 만들어냈다.
“이수호 씨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강 부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재킷 안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파일명은 이수호의 작전일지. 뭐, 이렇게 정하려고. 이런 걸 이렇게 꼼꼼하게 기록하는 성격인 줄 난 몰랐네. 허중혁 사장이 이 사실을 알면 꽤나 좋아할 것 같더군.”
“뭐야? 이게 뭐야?”
이수호가 새파랗게 질렸다. 강 부장으로부터 USB를 받아든 손이 부르르 떨린다.
“명심해. 민재는 자유롭게 살게 내버려 둬. 자기가 알아서 작전판을 떠나든지, 쫀지로 전락하든지, 건들지 말라고. 그러면 파일은 없던 걸로 하지.”
때마침 인터폰이 울렸다. “허중혁 사장님 호출입니다”라는 낭랑한 여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강 부장이 이수호에게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의신은 너무나 싱겁다고 생각했다. 짜증이 날 정도다. 채 2분을 버티지 못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남자 중에서 밤일 잘하는 남자는 없다’는 자신의 경험이 또 한 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침대 옆에서는 아직도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펀드 운용하느라 요즘 많이 힘들죠.”
“아, 의신아. 미안해. 신경을 좀 썼더니.”
씩씩대던 남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뭐가요. 저 되게 좋았어요. 과장님, 진짜 완전 킹왕짱이야.”
의신이 한 과장을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키 크고, 돈 잘 벌고, 얼굴 잘생기고, 매너 좋고 거기다 성격도 너무 착하다. 한 과장은 정말 완벽한 조건이었다. 자신에게 갖다 바친 것만 해도 어림잡아 5,000만 원이 넘을 것이다. 백에, 구두에, 시계에, 오피스텔 얻는다고 할 때는 여의도 쪽으로 이사 오라면서 아예 1,000만 원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독 섹스만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의신아.”
한 과장이 다시 키스를 하며 혀를 의신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그는 이어 한 손으로 그녀의 유방을 거칠게 주물러댔다. 침을 흘리며 귀를 빨아대더니 목덜미를 온통 침으로 뒤범벅 시켜버렸다. 의신의 아랫도리는 이미 흥분한 한 과장의 그것을 느꼈다.
“과장님, 잠깐, 잠깐만요. 아, 아직.”
“아니야. 이번엔 정말 뭔가 보여줄게. 헉.”
다시 한 번 남자의 빠른 허리 운동이 펼쳐졌다. 잠시 아파하던 의신도 그의 등을 와락 끌어안으며 다리를 한껏 옆으로 벌려주었다.
“아, 허, 헉, 아. 헉. 으억.”
들썩거리던 한 과장의 엉덩이가 다시 한번 힘없이 쓰러진다. 이번엔 채 1분도 안 돼 상황 종료다.
의신은 기어코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한 과장의 제안을 억지로 뿌리치고 모텔에서 혼자 나와 택시를 타고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벤치에 홀로 앉아 담배를 한대 물었다.
“후!”
길게 연기를 내뿜는데 핸드폰에서 메시지 도착 소리가 들렸다.
‘의신아. 뭐해? 나 지금 끝났어. 우리 만날까?’
서른한 살에 이사가 됐다는 외국계 JW모간증권의 전자업종담당 애널리스트다. 의신의 입에서 “피식” 하고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답장 보내기 버튼을 누르더니 ‘5분이나 버텨봐라. 이 한심한 새끼야’라고 입력한다. 하지만 결국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역시 백수이긴 해도 남자 친구 종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의도 공원 한복판을 가로질러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하면서 의신은 오늘 밤은 꼭 남자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오 기사. 역시 악연은 악연인가봐. 그렇지?”
이수호의 머릿속에 국제그룹 시절 정진표 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엔 그 아들 정민재가 다시 일을 배배 꼬이게 만들고 있다.
“사장님, 아니 전무님. 그냥 정민재를 빼죠. 그 자식이 실력이 좋긴 해도 그 정도 급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돼. 정민재는 끝까지 데리고 갈 거야. 그리고 아주 인생 저 밑바닥으로 보내버릴 거야. 내가 당했던 것만큼 되갚아주겠어. 대한민국, 아니 세상 어디서도 자신의 주민번호 갖고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버려야 돼. 똥개처럼 빌어먹는 노숙자로 만들 거라고!”
“그럼, 강 부장은 어쩌실 겁니까. 그리고 파일은….”
이수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 종이들에 만년필로 커다랗게 연신 ×자를 북북 그어댔다.
기안란 맨 오른쪽 끝에 허중혁이란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국제그룹에서 쫓겨난 후 10여 년 넘게 와신상담하다 다시 잡은 삼정그룹이다. 그렇게 잘나갔던 국제그룹이 1987년 김석기 정부 출범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이수호는 하늘은 역시 자기편이라고 통쾌해했다. 그리고 지금의 허중혁을 만났을 때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제 삼정그룹은 이수호의 모든 것이다.
“오 기사 생각은 어때? 강 부장 그놈. 허중혁 사장에게 파일을 넘길까?”
“….”
“말해봐, 편하게.”
“아까 그 기세로 봐선 넘기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검찰이나 언론에도 뿌릴 겁니다.”
“도대체 정민재가 뭐야? 대체 뭐기에 그렇게 감싸고 도냐고!”
이수호는 결코 허중혁을 놓칠 수 없다. 그렇다고 정민재도 놓아줄 순 없다. 그럼 이제 버릴 카드는 딱 하나밖에 없다.
“정민재, 지금 어디 있어?”
“태국에 갔답니다. 핸드폰 연락도 안 되고, 완전 잠수 탔다고 합니다. 명동 전주들도 애타하더라고요.”
연락이 안 된다는 오 기사의 말에 이수호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뒤로 크게 젖혔다.
“피스톨 강 가족 일, 오 기사도 알지?”
“그럼요. 작전 바닥에서 그 일 모르는 사람은 없죠.”
“강 부장, 가족 만나게 해줘.”
“네?”
“자살한 사람끼리는 하늘에서도 한데 뭉친다면서? 참고해둬.”
“알겠습니다.”
“혼자서 힘들면 무등산 큰형님한테 연락하고.”
흉물스러운 이수호의 뱀눈이 더 징그럽게 일그러졌다.
강 부장이 이수호를 만난 지 벌써 2주가 지났건만 아무런 연락이 없다. 강 부장은 민재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봤다. 핸드폰은 계속 불통이다. 혹시 명동에서는 연락이 되나 싶어 과거 친하게 지냈던 전주들에게 민재와 연락이 닿는지 물어봤지만 자기들도 답답하다는 반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성 메시지로 민재에게 전할 말을 남겨두긴 했다. 이쯤 되면 민재가 굳이 이수호와 함께 작업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수호가 10억 원 정도 수당을 제시하면 민재 역시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가능성도 높다. 강 부장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느덧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강 부장은 가뿐한 복장에 등산화를 신고 노고단 등산에 나섰다. 명일투신에 사표를 내고 남원의 친구 펜션으로 내려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5년 세일H&Q를 끝으로 작전업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결국 다시 이곳 지리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불현듯 민재 생각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핸드폰은 꺼져 있다.
“민재야, 그거 확인했지? 넌 꼭 버텨야 된다.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낫씽 리얼리 매터… 알지?”
1
적정 주가란 없다
1998 겨울~2000 봄
1998년 2월 9일. 공교롭게도 민재의 생일과 대학 졸업식이 겹쳤다. 그 힘들다던 IMF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민재는 너무 쉽게 한국생명에 입사했다. 아침부터 민재보다 부모님들이 오히려 졸업식 준비에 한창이다. 외아들 민재의 졸업식, 그것도 대한민국 엄마들의 로망인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최고의 생명보험사 한국생명에 당당하게 입사한 아들이 민재 엄마는 너무 자랑스럽기만 했다.
“민재야, 서진이 오늘 오지? 우리 어디서 밥 먹을까?”
민재 엄마는 방문을 열며 환하게 웃는다.
“밥? 아냐. 괜찮아.”
민재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얘들이 싸우기라도 했나’ 하는 생각이 민재 엄마 머리를 스쳤다. 하나뿐인 아들 졸업식인데 어떻게든 화해시킬 방법을 생각해봤다.
“서진이도 오니까, 오늘은 우리 근사한 데서 먹자. 민재야, 네가 서진이한테 오늘 이 엄마가 한턱 크게 쏜다고 자랑하렴.”
민재 엄마는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밝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 입에서 나온 ‘자랑’이란 말에 민재는 갑자기 울컥했다. 서진과 사귀면서 늘 느껴왔던 그 기분 나쁜 열등감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올라온다.
“뭐가 근사한 데야. 웬만한 좋은 데는 1인당 15만 원도 넘어. 뭘 크게 쏜다고 그래? 제발 신경 좀 쓰지 마세요.”
민재는 버럭 화를 냈다. 엄마가 말하는 ‘근사한 곳’이 너무도 빤하기 때문이다. 명동성당 뒤편 중국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민재는 부모님과 함께 졸업식 장으로 향했다. 사진 몇 방 찍은 게 전부인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역시 명동에서 화교가 직접 운영한다는 중국집에서 민재 가족은 중국 요리를 먹었다. 이날 종일토록 민재는 자신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엄마, 그리고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웠다. 식사 도중 가끔 ‘서진’이란 이름이 나왔지만 갑자기 일그러지는 민재 표정 때문에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재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모님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민재의 대학 졸업식 날, 그리고 생일날은 저물고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재네 집은 정말 잘나가는 집안이었다. 민재 아버지는 당시 국내 5대 그룹 안에 들었던 국제그룹의 핵심 계열사 사장이었다. 민재의 유년 시절은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아빠와 함께 로얄살롱을 타고 초등학교에 등교할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월감과 자신감에 우쭐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민재의 생활은 거짓말처럼 변해버렸다. 예상치 않은 자금경색에 그룹 부도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제그룹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국제그룹 석종현 회장 부부는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고 소아마비 외동딸은 이후 종적을 감췄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민재 아버지 정진표 사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된 핵심 비리의 주범으로 지목돼 경제사범으로는 드물게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민재와 부인에게 “억울하다, 모든 게 모함이다”라는 말을 연신 외쳐대던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됐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만 월급쟁이 사장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게다가 재산 대부분을 벌금으로 몰수당한 터라 민재네 는 결국 반지하 월세 단칸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3년은커녕 3개월도 안 돼 민재는 저 바닥으로 추락하는 처절한 몰락을 경험했다.
하지만 민재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국제그룹을 망쳐버리고, 대한민국 경제를 휘청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몰아가는 세상의 비난에 민재는 점점 더 위축되어야만 했다. 이후 민재는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공부를 했다.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공부 외에 남은 것도 없었다. 그렇게 서울대 경영학과에 당당하게 합격했을 때 반신불수 아버지는 세 시간 넘게 울고 또 울었다.
대학 시절 민재는 이미 완벽한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로얄살롱의 민재’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달에 과외 아르바이트 열한 개를 뛰면서 1년 만에 단칸방 살림을 방 두 개짜리 달동네 전셋집으로 일으켜 세웠다.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가면서 민재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작아져만 가던 자신감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던 민재의 마음을 다시 걷잡을 수 없이 흩트려놓은 건 바로 서진이었다. 부잣집 딸과 가난한 서울대생 남자의 만남. 그것은 상황 자체로 신파였고, 결말이 확연하게 보이는 삼류 드라마였다. 사랑의 시작 자체가 불경이고 죄악이었다.
대학 졸업식 일주일 전, 민재는 서진의 엄마로부터 직접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7년이 넘는 교제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따뜻한 목소리와 시선을 허락하지 않은 서진이 엄마였지만 이번만큼은 너무나 다정다감했다.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커피숍으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