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약력
정영권
부산대 영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KINO』 기자, 단국대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쳤으며 동국대·한국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했으며, 한국 영화장르를 정치·사회·문화사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적대와 동원의 문화정치: 한국 반공영화의 제도화 1949~1968』(2015), 『영화 이론 입문: 포토제니론에서 디지털 이론까지』(2018), 『영화 장르의 이해』(개정판. 2024), 공저로 『해방과 전쟁 사이의 한국영화』(2017), 『영화란 무엇인가?』(2022) 등이 있다.
백태현
경희대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한국영화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경희대·동국대·인하대 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영화사와 한류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공저로 『영화란 무엇인가?』(2022), 『K컬처 트렌드 2024』(2023) 등이 있다.
성진수
영화연구자·평론가.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거쳤으며,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출판이사와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동국대·경희대 등에서 영화와 대중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한국영화와 동아시아 영화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영화광의 탄생』(2016), 『욕망의 모모한 대상』(2021), 『영화란 무엇인가?』(2022), 『다시 한국영화를 말하다: 코리안 뉴웨이브와 이장호』(2023) 등이 있다.
정민아
성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출판이사,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 한국영상문화학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와 한양대 현대연화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아시아영화와 한국영화의 글로벌 수용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로 The Korean Cinema Book(근간), 『K컬처 트렌드 2024』(2023), 『K콘텐츠 코드』(2023), 『다시 한국영화를 말하다: 코리안 뉴웨이브와 이장호』(2023), 『봉준호 코드』(2022) 등이 있다.
홍진혁
부산대 영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동국대 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 전임연구원, 한양대 현대영화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이다. 동국대·상명대 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영화사를 중심으로 영화형식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장군의 수염〉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양식적 특징: 스타일적 일탈과 제도적 승인의 결합」(2023), 「한국 시네마스코프 전환 시기의 영화 <여사장>의 스타일 분석」(2021), 「한국 사회문제영화의 특징과 의미: 현실정치의 패배감에 대응하는 제의로서의 장르」(2019) 등이 있다.
책을 펴내며
영화를 통한 역사 읽기, 역사를 통한 영화 읽기
〈서울의 봄〉(2023)과 〈파묘〉(2024)의 천만 흥행은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팬데믹 이후 〈범죄도시〉 시리즈가 연달아 천만 관객을 이끌어 냈지만, 그보다 더 제작비가 많이 투여된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 외국영화를 포함해 천만 영화가 5편(〈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겨울왕국 2 Frozen II〉, 〈알라딘 Aladdin〉, 〈기생충〉)이나 나왔고, 〈엑시트〉가 천만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과 몇 년 만에 좋았던 옛 시절이 되었다. 감염병, 제작·투자의 감소, 극장 가격 상승, OTT의 부상 등 여러 요인들과 맞물려 한국영화 산업의 규모는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후퇴했다. 〈범죄도시〉의 연이은 흥행은 이해할 만했다. 그동안 극장에 가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마동석의 후련한 액션은 일종의 보상(혹은 팬데믹에 대한 복수) 심리로 작용했을 것이다. 당분간 한국영화로서 〈범죄도시〉 시리즈 외에는 천만 영화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너무도 빨리 다가왔다. 그것도 전통적인 비수기인 2023년 11월에 12·12사태라는 지난 세기의 음울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영화로 말이다. 〈서울의 봄〉에 이어 몇 달 지나지 않아 〈파묘〉가 또 천만 흥행을 달성했다. 본격 역사영화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있어 왔던 일종의 도시 전설을 소재로 활용한 이 영화는 ‘상업화한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역사와 역사 아닌 것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두 영화의 흥행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역사영화, 그 중에서도 현대사를 재현한 영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민주화 이행기인 1980년대 후반~1990년대까지 역사영화는 리얼리즘이라는 진지한 형식으로 재현하는 것이어야 했다. 독재 정권하에서 공식적 역사에 반하는 대안/대항적 역사는 적어도 상업영화에서는 시도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1980년대 변혁운동의 세례를 받은 감독들은 영화를 통한 역사의 상품화를 일종의 불경(不敬)으로 여겼다.
그러나 IMF 이후 영화산업의 고도화와 장르영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역사영화를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 바꿔 놓았다. 마침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소위 민주세력의 집권은 그동안 금기시 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스크린에 풀어 놓을 수 있는 표현 영역의 확대를 가져왔다. 산업적으로는 멀티플렉스의 확장이 관객의 양적 성장을 위한 기반이 돼 주었다.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는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선택적 친화성을 일으켜 작동한 결과였다. 〈실미도〉의 대성공은 실재했던 인물·역사이든 단지 역사적 배경만을 차용한 것이든 한국영화가 역사를 상품화하는 것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화려한 휴가〉(2007) 등의 성공은 2000년대 이후 역사영화를 여느 장르와 다르지 않은 상업적 장르 사이클로 인식하게 했다.
바로 이러한 영화사적 인식이 이 책의 1부를 구성한다. 1부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나뉜다.
1장에서 정영권은 200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영화의 정치사적 계기들을 다룬다. 〈실미도〉의 영화화가 말해 주듯 관객을 소구하는 문화상품으로서 역사영화의 출현은 정치사적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실미도〉와 2000년대 역사영화의 흐름은 민주화 이행기가 지나고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시점과 맞물린다. 절차적·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어 냈지만 이것을 어떻게 공고화시키고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실미도〉와 〈웰컴 투 동막골〉 등에 대한 극우단체의 고소와 비난, 오늘날까지도 정치판을 달구는 뉴라이트의 등장, 이에 대한 진보세력의 방어와 비판은 과거의 역사를 전유하는 것이 현재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2010년대는 역사를 통한 영화전쟁, 즉 역사영화 전쟁이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다. 박근혜 정권 시기 〈인천상륙작전〉(2016)에 대한 KBS의 투자·홍보는 논외로 치더라도, 〈변호인〉(2013), 〈택시 운전사〉(2017), 〈1987〉(2017)로 이어지는 ‘영화로 민주화운동 다시 쓰기’는 ‘촛불혁명’, 민주세력의 재집권과 궤를 같이 한다. 한편, 2010년대 중후반의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 사이클은 박근혜 정권의 한일 위안부 합의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그리고 이어지는 문재인 정권의 일본과의 반목과 결부된다.
그러나 영화가 단지 역사와 정치의 반영이 아닌 한 정치사적 계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문화상품이자 산업적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2장에서 정민아가 거론하는 것은 이 문제다. 역사학과 기억이론에서 논하듯이, 이미 영화는 매체를 경유한 문화적 기억으로 전승되고 있다. 특히 동시대와 그리 멀지 않은 현대사 영화는 문화적 기억이자, 이를 관람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실천이다. 이제 1990년대까지의 리얼리즘적 관점으로 역사영화를 제작하는 시대는 지났다. 〈변호인〉, 〈국제시장〉, 〈택시 운전사〉, 〈서울의 봄〉 등 천만 영화가 말해 주듯, 대중은 기억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이는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시로까지 해석되곤 한다. 그렇기에 시민/관객의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 전략은 필수적이다. 관객을 끌기 위해서는 상업성과 대중성에 입각한 감성 코드가 중요하다. 리더십에 대한 문제의식, 향수와 복고 스타일, 팟캐스트·유튜브·SNS로 진화해 온 공론장, 공정세대가 역사에 갖는 마음의 빚, 유토피아 판탄지로서의 승리 서사가 5개의 감성 코드이다.
1장과 2장이 영화 외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면, 3장 이후는 영화 내적 측면에 대한 논의다. 3장에서 성진수는 한국 현대사 영화의 주요 서사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다. 범박한 도식화를 무릅쓰자면, 한국 현대사 영화는 가진 것 없는 ‘못난 애비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아버지 서사가 있다.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역사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아버지,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휘말리지만 그것을 철저히 사적 경험으로 내면화시키는 아버지다. 〈화려한 휴가〉,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이 전자라면, 〈효자동 이발사〉(2004), 〈나의 독재자〉(2014), 〈국제시장〉 등이 후자다. 국가폭력 앞에 의로움으로 맞서는 민주화 시대의 아버지이든, 가족 부양의 의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이든, 결국 이 영화들은 한국 현대사를 가(부)장의 역사로 치환하고 기꺼이 ‘아버지를 위한 송가’가 되기를 자처한다. 물론, 이 영화들은 시대의 폭력을 고발하고 억압으로 점철된 역사를 ‘보통사람’의 위대함으로 돌파한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이러한 (소)시민성의 ‘건강·건전함’에 긴박되어 정치적으로 순수하고 중립적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것은 문제적이다. 여기에는 어떤 무고함에의 강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영화의 급진성을 미연에 제거하는 일이다.
영화는 서사와 캐릭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를 기술적·미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카메라다. 역사영화에 고유한 기술과 미학은 있는가? 4장에서 홍진혁은 이에 답한다. 2000년대 이후 역사영화는 유달리 군중 장면에 집착을 보여 왔다. 디지털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현대사 영화에서 과거의 이미지를 보다 크고 웅장하며 생생한 것으로 바꿔 놓았다. 물론, 이는 역사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기술의 격전장이 되고 있는 SF영화가 국내에서 부상하기 전까지, 역사영화는 디지털 기술이 리얼리즘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즉, 특수시각효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리얼리티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군중 장면에서 이전에 대규모 엑스트라 동원은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대체된다. 여기에서 원인-결과가 바뀌는 전도가 일어난다. 군중 스펙터클이 역사적 사건을 표현하는 결과가 아니라 군중 스펙터클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이 동원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영화가 스펙터클의 미학에 경도되어 있다면 이는 기술적 욕망이 추동한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역사영화는 물론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의 반영이 아니라 문화상품이듯이, 또한 기술과 미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역사영화를 정치적·사회적 의미에만 한정한다면, 그것은 절반만을 아는 것이다.
5장은 가장 동시대적인 한 편의 영화에 집중한다. 어째서 2023년에 12·12사태(1979)는 스크린에서 유령처럼 부활한 것일까? 〈서울의 봄〉은 시간을 배열하는 역사 다큐멘터리의 관습과 폐쇄적인 공간을 전용하는 스릴러적 장치로 대중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우리는 패배의 역사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극적 긴장감과 영화적 재미에 매료당한다. 아니, 오히려 우리를 어떤 의미로든 전율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저 무도한 군사반란의 무리로부터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이태신(정우성)은 그래서 숭고해진다. 백태현은 이것이 동시대적 욕망이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캐릭터 구축에서 이태신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변화 없는 캐릭터다. 그는 피와 육신을 가진 생생한 인간이기보다, 절대악에 맞선 절대선의 화신이다. 현실에 없는 인간이기에 동시대 대중의 판타지로 자리 잡는다. 그는 패배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패배했기 ‘때문에’ 동시대의 영웅이 된다. 이는 여전히 음모와 협잡, 거짓과 위선, 혐오와 멸시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구원자의 이미지로 남는다.
1부가 다양한 쟁점을 비교적 길게 풀어낸 글이라면, 2부는 유사한 소재·형식의 역사영화를 비교한 짧은 리뷰로 구성한다. ‘영화 vs. 영화’라는 포맷으로 이루어진 2부는 보다 대중적인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순서는 ‘가부장과 산업화’를 다룬 1960~1970년대 배경 영화들(1장), ‘시민과 민주화’를 그린 1980년대 배경 영화들(2장), ‘분단과 세계화’를 재현한 1990년대 배경 영화들(3장)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국제시장〉이 오프닝을 여는 한국전쟁부터 〈국가부도의 날〉이 ‘망국의 문’을 닫는 IMF 금융위기까지 걸쳐 있다.
주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짝지어 놓았지만, 기준점이 되는 것은 물론 한국영화다. 이를테면, 〈국제시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헤쳐나온 소시민 윤덕수의 삶은 미국 현대사에 우연히 개입해 역사를 ‘바꿔 놓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과 비교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산업화 시대 한국에서 민주주의 부재(〈국제시장〉)와 1960~1970년대 미국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조롱(〈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이 언급될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역사에 대한 비교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영화 속 역사도 이 책의 관심사지만, 영화가 어떻게 영화만의 고유한 형식과 미학으로 역사를 재현하는지도 이 책의 주안점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봄〉과 〈대부 The Godfather〉(1972)는 소재면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지만, 조명을 비롯한 미장센, 갱스터 장르적인 캐릭터 등은 두 영화가 갖고 있는 유사성을 설명해 준다.
이러한 관점은 영화연구자로서 우리의 관점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다. 기존의 역사영화 서적들은 주로 역사연구자들에 의해 쓰였다. 이 책들은 영화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는 영화에 담긴 역사를 서술하는 것에 주로 할애해 왔다. 즉, 영화는 역사를 해설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물론 이는 필요한 작업이다. 영화가 모두의 것인 한 그것이 대중의 역사 공부를 위해 활용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연구자들의 일이듯이, 영화를 중심에 두고 역사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이 책은 기초적인 학술서이자 대중을 위한 교양서로 기획되었다. 만약, 1부가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면, 2부로 건너뛰어 영화들을 찾아 본 후 리뷰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은 읽기 방식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영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 읽기, 역사를 통한 새로운 영화 읽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이 책의 역사적 소임일 것이다.
2024년 11월
필자를 대표해 정영권
1장
한국 근현대사 영화의 정치사적 계기들 2003~2019
(근)현대사 영화: 용어와 쟁점
2023년 11월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2023)은 대중영화의 역사 재현이 갖는 파급효과와 더불어 역사영화가 대중적인 방식으로 역사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위 MZ세대 사이에서 10·26 사태와 12·12 사태를 비롯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때아닌 ‘역사 공부’ 열풍이 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한편에선 ‘공산침략자’들로부터 대한민국을 ‘구원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을 칭송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2024)이 다큐멘터리로서는 적지 않은 백만 관객을 모으며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의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덕영은 일제강점기 ‘쇠말뚝설’이라는 허구적 소재를 대중적 화법으로 풀어낸 또 한 편의 천만 영화 〈파묘〉(2024)를 언급하며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파묘〉로 분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편향적 언설이 황당하게 들리긴 하지만 역사영화가 특정한 정치적 국면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정치적 ‘시민’으로 호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주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로만 취급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 장은 이 책의 총론으로서, 2003년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 이후 2019년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의 정치사적 측면을 짚어 본다. 시기를 이렇게 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3년은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화 단계에 이른 노무현 정권이 탄생한 해이자, 역사적 재현이 금기시 되었던 실미도 사건이 영화 〈실미도〉를 통해 대중적 호응을 얻어 최초의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해였다. 한편,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의 기원인 임시정부가 탄생한 해였고,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한일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한일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해였다. 또한, 2015년 〈암살〉의 천만 흥행 이후 양산되었던 상업적 반일 민족주의 영화 사이클이 사그라들던 해이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이 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시기라면, 2020년 이후의 근현대사 영화에 대한 전망은 이 장 말미에 간략하게 서술할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이 있다. 바로 ‘한국 (근)현대사 영화’라는 용어의 문제이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 혹은 이와 친연성을 갖고 있는 영화를 가리키는 용어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물론, 이 장은 이러한 용어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 영화’ 내지 줄여서 ‘(근)현대사 영화’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장르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총론에서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역사영화 내지 이와 관련한 장르 용어들은 적지 않다. 한국영화·TV드라마에서는 저널리즘적으로 (역)사극, 시대극이라는 용어가 지배적이었다. 전자는 실재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기반으로 하며, 후자는 역사적 배경·설정만을 빌려오는 경우를 가리킨다. 전자의 예로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24) 등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예로서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방자전〉(2010)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영화DB 사이트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가 ‘시대극/사극’으로 뭉뚱그려 표기하듯이 구별 없이 쓰이기도 한다. 이에 비해 역사영화라는 용어는 저널리즘보다는 학계·비평계에서 더 많이 쓰이는 용어인데, 사극/시대극이 주로 전근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가리킨다면 역사영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역사적 상황·사건, 인물을 포함하는 영화를 지칭한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안시성〉(2018), 일제강점기를 무대로 한 〈동주〉(2016), 1980년대를 다룬 〈1987〉(2017) 등이 모두 역사영화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역사영화를 진정성(authenticity)의 유무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진정성의 개념이 매우 자의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은 매우 협소해 보인다. 역사영화는 영어권에서 ‘historical film’으로 불리는 영화들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한데, 이는 역사에 관여하는 영화(engage with history)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와의 관계를 구성하는 영화를 지칭한다.1) 영어권 용어로 가면 용어 정의는 더 복잡해지고, 어떤 한 요소를 공유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겹치는 성격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코스튬 필름/드라마(costume film/drama)는 역사적 실재와 무관하게 전근대 의상이나 세팅이 전시되는 영화로서 제인 오스틴 원작 영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장르는 시대와 일치하는 의상(costume)을 통해 역사상의 한 시기를 다루며, 로맨스와 모험을 위한 이국적인 세팅으로 과거를 활용한다. 대체로 이 용어는 진정성 있다고 여겨지는 역사영화보다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경멸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피어리어드 필름(period film)은 코스튬 필름보다 가까운 과거를 가리키는 영화를 말하는데, 어디까지가 가까운 과거인지를 정하는 것이 상당히 모호하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말모이〉(2019), 한국전쟁 이후 동시대까지를 다룬 〈국제시장〉(2014), 1980년대를 다룬 〈1987〉 등이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서는 피어리어드 필름으로 불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에픽(epic. 서사극)은 장대한 서사나 화려한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영화를 칭하는데, 현대보다는 전근대(특히 성서 시대,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아 역사영화, 사극/시대극이라는 용어와 겹치기도 한다. 〈벤허 Ben-Hur〉(1959), 〈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 등이 대표적인 에픽 영화들이다. 그러나 20세기를 배경으로 한 〈대부〉(The Godfather) 시리즈를 에픽이라고도 부르듯이 꼭 전근대에 국한하지만은 않는다.
여기에 더해 2000년대 중후반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팩션(faction)’이라는 용어가 ‘팩션영화’, ‘팩션사극’ 등으로 저널리즘화 되었는데 이는 정통 역사(학)를 고수하는 보수적 사학계에 대한 반발과 역사대중화의 일환으로 출현한 것으로서 현재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는다. 이외에도 영국적인 전통에서 ‘헤리티지 필름(heritage film)’이라 불리는 영화는 ‘대영제국’ 시대의 영광과 그 유산을 회고조로 돌아보는 영화로서 특히 1980~1990년대에 제임스 아이보리(James Ivory)의 〈전망 좋은 방 A Room with a View〉(1985), 〈하워즈 엔드 Howards End〉(1992),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1993)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는 개항에서 현재까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재현하는 영화를 ‘한국 (근)현대사 영화’로 정의할 것이다. 역사학계의 일반적 시대구분에 따라 근대사는 개항 이후~해방 이전(특히 일제강점기)까지, 현대사는 해방 이후~현재까지로 규정한다. 그러나 거의 2000년대 이전 시기를 재현한 영화에 한정할 것인데, 2000년대 이후를 재현한 영화를 역사영화, 근현대사 영화로 부르기에는 너무 가까운 동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목적은 근현대사 영화가 출현한 정치사적 계기를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란 제도권 정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선과 총선 같은 제도정치 뿐 아니라 뉴라이트의 등장, 천안함·연평도 사건, 용산 참사,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소위 ‘역사전쟁’, 위안부 합의, ‘촛불혁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한일 무역분쟁과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 이른바 대중정치, 문화정치 역시 모두 정치사에 해당한다. 많은 역사영화 논자들이 거론하듯이, 역사영화는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며, 그것의 실제적, 궁극적 주제는 현재에 있다. 역사영화는 과거를 재현하지만, 영화가 제작된 현재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또한 역사영화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순간에 이루어진 역사의 해석이다. 역사영화는 과거를 다루지만 그 관점은 현재적이다. 역사영화는 현재의 정치를 둘러싼 헤게모니의 장이고, 현재의 정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치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탈냉전 민주화 이행기를 거친 시기이자,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권위주의 해체를 추진한 2003년 노무현 정권의 등장, 같은 해 최초의 ‘천만 영화’로서 정치적 금기로 여겨져 왔던 실미도 사건을 재현한 〈실미도〉 이후 한국 근현대사 영화의 정치사적 계기들은 무엇이었는지,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은 어떤 정치를 통해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과거사 청산’ 시기의 영화적 성과들 2003~2007
우선, 〈실미도〉가 한국 근현대사 영화의 시초가 아니기 때문에 근현대사 영화의 전사(前史)를 언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근현대사 영화가 한국영화사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대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물’, ‘전기물’, ‘시국영화’라는 명칭으로 제작 시기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시대를 그린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9년에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한말풍운과 민충정공〉, 〈유관순〉,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이름없는 별들〉 등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이는 3·1운동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나온 일시적인 현상이기도 했지만, 다분히 이승만 정권이 대중적 반일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통치이념으로서의 ‘반일주의’와 연동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제적 성격은 당연히 박정희·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져 왔고, 적어도 1987년 6·10민주항쟁 이전까지 한국의 근현대사적 사건을 전면에서 다루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해방 이후의 역사적 사건 중 거의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한국전쟁이었는데, 이는 냉전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민주화 이전 한국의 전쟁영화는 그 자체로 반공영화로 통용되었다.
민주화 이행기인 1990년대에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주로 전쟁과 분단을 소재로 했다는 것은 그래서 주목을 요한다. 〈남부군〉(1990),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태백산맥〉(1994), 〈아름다운 시절〉(1998)은 한국전쟁을, 〈하얀 전쟁〉(1992)은 베트남전쟁을 재현했다. 이 영화들은 전쟁을 ‘공산도배’들을 향한 적개심 어린 전투의 장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영화들이었고, 세계사적 탈냉전이라는 대외적 측면과 민주화라는 대내적 측면이 결합된 ‘탈냉전 민주화 이행기’의 산물이었다. 아울러 〈부활의 노래〉(199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꽃잎〉(1996) 역시 보다 가까운 과거를 ‘역사적 기억’으로 재현하며,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특히 진지함 내지 ‘진정성’은 역사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속성이었다. 역사영화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나 인물을 재현하는 듯한 사실 효과(reality effect)를 통해 관객의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진정성을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영화들이 진정성을 그 생명으로 하는 리얼리즘 형식을 취했으며 비판적 리얼리즘, 더 나아가 광범위한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것은 당연한 측면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대기업의 영화계 진출에 따른 대형화 경향, 이와 연동해 빠르게 진행된 상업화·장르화 경향은 근현대사를 재현한 영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됨으로써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반세기 동안 통치의 중심이었던 보수세력이 소위 민주개혁 세력에 권력을 이양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시기에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 분단상황을 세련된 상업적 전략으로 재현한 영화들이 나왔지만 금기시 되어 왔던 굵직한 현대사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상업영화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과거사 청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김대중 정권은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대통령 당선을 위해 민주화 이후 가장 보수적인 정당으로 평가되는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손잡은, 이른바 DJP연합으로 인해 과거사 청산에 미온적이었으며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시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보수세력과 타협을 추구했다. 그러나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1999~2005) 등의 TV 프로그램이 과거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촉진 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과거사 청산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정권 초기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 직접적으로 대중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적 정치와 보수 엘리트들에게 심히 거슬리는 ‘과격한’ 발언들이 ‘고졸 대통령’에 대한 멸시와 맞물려 탄핵 소추에 이르게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기사회생했고, 탄핵에 대한 역풍으로 2004년 총선에서 신생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면서 명실상부한 집권 여당이 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 시도와 함께 20여 개에 달하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과거사 청산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해방 이후 친일경력과 독재정권의 한 축을 형성했던 보수세력에게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 2003년 12월 개봉한 〈실미도〉는 이러한 시기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영화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그것은 냉전 시대 입에 담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북파 공작원을 처음으로 상업영화에 재현했으며, 박정희 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이용되었다가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스크린에 불러 모았다. 이는 어쩌면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대중영화가 발현한 것이기도 했다. 〈남부군〉이 빨치산을, 〈그 섬에 가고 싶다〉가 양민학살을 재현했지만 그것이 대중에게 생생하게 기억되는 역사적 ‘사건’은 아니었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전태일의 분신을 영상화했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독재권력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다.
〈실미도〉(2003)
또한 〈실미도〉는 이 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어두운 현대사 재현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실미도〉에 이어 천만 관객 고지에 오른 〈태극기 휘날리며〉(2004)나 600만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웰컴 투 동막골〉(2005)도 실존 인물이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진 않지만 전자는 일부 장면에서 국군의 국민보도연맹 학살을, 후자는 미군의 폭격에 남북한 군인들이 힘을 합친다는 설정으로 이전 시대라면 상상하기 힘든 정치적 관점을 드러냈다. 특히 〈웰컴 투 동막골〉의 ‘반미적’ 관점이 보수세력에게는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이어졌는데, 그들은 당시 논란이 된 맥아더 동상 철거 이슈를 언급하며 이러한 인식의 배후에 이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박정희의 전속 이발사라는 설정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소시민의 이야기를 그린 〈효자동 이발사〉(2004), 그리고 10·26 사태를 철없고 무책임한 정치꾼들의 어처구니없는 희비극으로 재현한 전대미문의 ‘포스트모던 정치 풍자극’ 〈그때 그 사람들〉(2005)이 이어졌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과 딸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과 상영금지 소송을 내기도 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자식들의 행동은 일견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이 소송은 훗날 극영화에 실제 기록화면을 삽입하거나 실명을 사용하는 데 재갈을 물리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다가왔다.
이러한 영화들은 민주화 이행기를 지나 제도적 민주주의의 정착 시기에 제작·개봉되었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면, 과거사 청산의 핵심은 학살·고문·사건 조작·전향 공작 같은 인권 탄압에 대한 진상규명이었고 그 화살은 피할 수 없이 독재정권 하에서 이러한 일을 자행한 기득권 보수세력을 향하고 있었다. 뉴라이트는 이러한 정치적 분위기에서 등장했다. 2004년 뉴라이트 세력의 포문을 연 자유주의 연대는 노무현 정권이 ‘자학 사관’을 퍼뜨리고 있고 친북주의적 사고로 국가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0년대 중반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전초전 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뉴라이트 세력은 한국자유총연맹 등 소위 관변 보수단체(올드 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