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23년 2월 28일
글쓴이 | 김승훈 외 10명
펴낸이 | 이경민
펴낸곳 | ㈜동아엠앤비
출판등록 | 2014년 3월 28일(제25100-2014-000025호)
주소 | (03737)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35-17 인촌빌딩 1층
전화 | (편집) 02-392-6903 (마케팅) 02-392-6900
팩스 | 02-392-6902
이메일 | damnb0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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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363-642-7
값 12,600원
들어가며
국내 주요 언론 현직 기자 11명이 뭉쳤다. 고등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시사상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신문, 방송, 통신 등 11개 언론사 현직 기자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시사상식을 집필하는 건 출판 사상 최초라 할 만하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가 흘러넘친다. 매일 수천 개의 기사들이 온라인에 쏟아져 나온다. 국회만 해도 1,0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날마다 수백 개의 기사를 온라인으로 밀어낸다. 기사를 가장한 ‘가짜뉴스’도 판을 친다. 보통 온라인에 떠도는 수많은 기사 중 한 개를 클릭, 그 기사를 접하게 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그 기사 내용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 어디에서 봤는지는 쏙 빼놓고, “그거 이렇대”라며 확신에 차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내용을 접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현직 기자 11명이 의기투합한 것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세상을 보는 객관적·상식적 시각을 정립해야 할 고등학생들이 무분별한 뉴스에 오염이 돼 잘못된 생각을 키우게 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역 기자들이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팩트체크’를 통해 팩트로 확인된 내용만 객관적으로 담았다.
대개 시사상식 책이라고 하면 시사용어 풀이집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시중의 시사상식 책 대부분은 용어에 대해 간략하게, 또는 상세하게 설명하는 차이만 있을 뿐, 용어 풀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들은 이런 단순 암기식 지식 나열을 철저히 지양했다. 어떤 이슈가 있다면, 그 이슈를 둘러싼 배경 설명, 역사, 의미 등을 두루 짚었다. 이 책 한 권으로, 해당 이슈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저자들은 치열한 회의를 거듭한 끝에 2022년을 대표하는 이슈로 •검찰 수사권 분리 •용산 시대 개막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녹색에너지 •테라-루나 사태와 암호화폐의 세계 •코로나19 •누리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전쟁 •세계 속 한류 •징벌적 손해배상과 언론개혁법, 11개를 선정했다. 본문 내용은 2022년 9월 30일까지의 상황을 토대로 정리했다.
검찰 수사권 분리
문재인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줄이기 위해 대대적인 검찰 개혁을 단행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한 검찰 수사권 축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에 이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까지 밀어붙였다. 반면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을 추진했다. 전·현 정부가 검찰 수사권을 놓고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검수완박과 검수원복, 국민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용산 시대 개막
5년 만의 정권 교체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의 일터였던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겼다. 용산 시대가 개막과 함께 청와대는 74년 만에 전면 개방됐다. 용산 시대 개막과 청와대 개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한국 경제에 고환율·고물가·고금리라는 ‘3고高’ 위기가 덮쳤다. 환율은 천정이 뚫린 듯 거침없이 치솟고, 물가도 ‘악’ 소리가 날 정도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금리도 덩달아 가파르게 상승하며 서민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있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의 상관관계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까.
녹색에너지,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정책으로 ‘탈원전’을 추구했다. ‘원자력’을 나쁘다고 보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힘을 쏟았다. 반면 5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정책으로 선회했다. 원전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판이한 것. 원전은 우리에게 독毒일까 약藥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월 24일 새벽 6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압도적 군사력에 단 사흘이면 수도가 함락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크라이나는 7개월이 넘도록 항전 중이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향후 국제 질서는 어떻게 바뀌어 갈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경제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까.
미중 패권 전쟁
미국과 중국, G2가 맞붙었다. 대만을 둘러싼 정치·안보적인 대결을 넘어 경제, 기술 분야까지 대치 전선이 확대됐다. 두 강대국에 의존도가 큰 한국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가 없다. 미국과 중국은 왜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됐고, G2의 대결이 국제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징벌적 손해배상과 언론개혁법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언론개혁법을 추진했다. 민주당은 일반 시민의 ‘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언론·시민단체 등은 “언론 옥죄기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타당한가.
이 책을 읽고, 위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게 그려진다면, 구술이든 면접이든 그 어떤 자리에서나 자신 있게 적확한 답변을 내놔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돋보이는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보다 현재 발 딛고 서 있는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김승훈
서울신문 기자
CONTENTS
들어가며
ISSUE 01
검찰 수사권 분리
김경욱 한겨레신문 기자
ISSUE 02
‘용산 시대’ 개막
최지숙 연합뉴스TV 기자
ISSUE 03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김승훈 서울신문 기자
ISSUE 04
녹색 에너지,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김남중 국민일보 기자
ISSUE 05
테라-루나 사태와 암호화폐의 세계
이제형 내일신문 기자
ISSUE 06
코로나19·변이바이러스
박호근 MBN 기자
ISSUE 07
누리호 발사 성공
홍기삼 뉴스1 기자
ISSUE 08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권영은 한국일보 기자
ISSUE 09
미중 패권 전쟁
오예진 연합뉴스 기자
ISSUE 10
세계 속 한류
박소희 MBC 기자
ISSUE 11
징벌적 손해배상과 언론개혁법
이지율 뉴시스 기자
ISSUE 01 검찰 수사권 분리
검찰 역사에서 2022년은 ‘최고의 해’로 꼽힐 만하다. 검찰 조직에 대한 이해가 높고,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직전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2022년은 검찰 역사에서 ‘최악의 해’이기도 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대대적인 검찰개혁을 추진했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한을 분산해 검찰의 정치적 수사와 기소를 막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검찰 수사권 축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검찰로 시작해, 검찰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 힘 빼기’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과도하게 축소했다’며 검찰권 회복을 추진 중이다. 또한 2022년 후반기 국회가 개원한 뒤, 여야 합의로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꾸려지면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등 검수완박 후속 조처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됐다.
중수청이 출범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완전히 폐지된다. ‘민주주의 발전과 무소불위 검찰권력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수사-기소권 분리는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면서 논란은 가열되는 양상이다. 검찰개혁은 왜 필요했고,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왜 수년째 논란일까.
수사와 재판, 형사사법 체계의 두 기둥
수년 동안 이어져 온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형사’刑事란, 사복경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인 형법의 적용을 받는 사건을 말한다.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합당한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형사사법 시스템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한 번 들어보자. 물론, 가정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60대 남성 ㄱ씨가 흉기에 찔려 숨져 있는 것을 그의 아들 ㄴ씨(30대)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지문과 유전자DNA, 인근 폐쇄회로TVCCTV 등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고, 목격자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찾아 나선다.
수사 결과, 범인은 아랫집에 사는 40대 남성 ㄷ씨였다. ㄷ씨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고, ㄱ씨의 신체에서도 ㄷ씨의 DNA가 검출된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ㄷ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층간 소음으로 ㄱ씨와 갈등을 빚어오다가, 사건 당일 분을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ㄷ씨의 자백으로 범인이 검거되면, 사건은 완전히 끝나는 것일까.
살인 사건 등 범죄를 다루는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범인 검거가 작품의 ‘엔딩’이 될지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범인 검거만큼이나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다. 바로 재판이다. 범죄자에게 범행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과정은 검거만큼이나 중요하다. ㄷ씨가 살인 사건에 대한 벌을 받지 않거나, 아버지를 잃은 ㄴ씨가 ㄷ씨를 찾아가 사적으로 복수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국가가 범죄자를 찾아내 그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은 법치의 기본이다.
범죄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 경찰은 범죄자를 직접 법정에 세울 수 없다. 기소권이 없기 때문이다. ‘기소’란 쉽게 말해, 범죄 혐의가 뚜렷한 수사 대상자를 재판에 넘기는 행위다. 공소제기와 같은 말로, 대한민국 사법 체계상 이는 ‘검사’만이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자신들이 수사한 사건의 기록과 증거물 등을 관할 검찰청으로 보내는데, 이를 ‘송치’라고 한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범인과 범죄사실, 증거 등을 추가로 수사하기도 한다.
검찰에 권한이 집중됐던 형사사법 체계, 언제부터?
‘수사’와 ‘재판’이라는 형사사법 체계의 두 축에서 검찰은 이례적인 존재다. 경찰은 수사를, 법원은 재판을 담당하지만, 검찰은 이들 두 영역에 모두 관여한다. 지금도 검찰 권한은 막강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되고 공수처가 출범한 2021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고 있었다. 기소독점권은 물론, 직접 수사권, 수사지휘권, 수사종결권, 영장 청구권 등 형사사법 권한을 독점하며 우월적 지위를 누려왔다. 검찰은 모든 사건에 대해서 직접 수사할 수 있었고(직접 수사권), 수사에 관해 경찰을 지휘할 수 있었으며(수사지휘권), 수사에 대한 최종 판단을 유일하게 내릴 수 있었다(수사종결권).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에 필요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주체도 검찰이 유일했다(영장 청구권).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것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국회에서는 검찰과 경찰 중 어느 기관이 ‘파쇼’(권위주의 독재)가 될 위험이 큰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권력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압박을 일삼은 ‘순사’(경찰)에 대한 경험이 크게 작용하면서 검찰에 권한이 집중됐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형사소송법 제정 작업에 참여한 검찰 출신 국회의원이었던 엄상섭 법사위원은 “(검찰이) 기소권만 가지고도 강력한 기관인데, 수사권까지 플러스하게 되면 결국 검찰 파쇼를 가지고 올 것”이라면서도 “경찰에다가 수사권을 전적으로 맡기면 경찰 파쇼가 될 것이다. 검찰 파쇼보다는 경찰 파쇼의 경향이 세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범죄 수사의 주도권은 검찰이 가지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장래에는 우리나라도 조만간 수사권하고, 기소권하고 분리시키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국회에 출석한 한격만 검찰총장도 “이론적으로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검사에게는 기소권만 주는 것이 법리상 타당하지만, 이는 100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검찰에 주어진 수사권을 두고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다. 김대중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했는데, 당시 검찰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검찰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검·경 수사권 조정협의체를 발족해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지만, 검·경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며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에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논의와 청와대가 검·경 중재 등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의 해묵은 갈등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기 전만 하더라도 검찰과 경찰은 수직적 관계였다. 경찰은 모든 수사에 관하여 검사의 지휘를 받았다. 수사의 주체는 검사였고, 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 사실상의 보조기관이었던 셈이다.
앞서 예로 든 마포구 살인 사건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기 전이라도 검사의 지휘가 있다면 그에 따라야 했다. 경찰에는 수사종결권도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ㄷ를 붙잡아 ‘기소 의견’(혐의가 있으니 재판에 넘겨달라) 또는 ‘불기소 의견’(혐의가 없으니 재판에 넘기지 말아달라)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 검사가 공소를 제기(기소)하거나 불기소(기소하지 않음) 처분을 하는 것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경찰에 영장 청구권이 없는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데,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ㄷ씨 자택에 있을 것으로 의심한 경찰이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고자 할 때도 반드시 검찰을 거쳐야 한다. 경찰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적절성 여부 등을 파악한 뒤 영장 신청을 반려하거나,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구조다. 경찰이 ㄷ씨를 체포하거나 구속하려고 할 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영장은 검사만이 법원에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는 경찰 입장에서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검찰 없이도 충분히 책임 있게 수사할 수 있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거나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장 청구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영장 발부 여부는 최종적으로 법원이 결정하는데, 경찰이 직접 영장을 청구해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되지, 굳이 중간에 검찰을 거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경찰 쪽 논리다. 경찰이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비롯해 수사종결권, 영장 청구권을 꾸준히 요구해 온 이유다.
검찰 입장은 다르다.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과 영장 청구권을 주면,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사라진다는 것이 검찰 반론의 핵심이다. 수사의 목적이 범죄자에 대한 유죄판결과 처벌이라면, 법률전문가의 시각에서 엄격하게 증거와 사실관계를 검토해야 하는데,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면 그런 과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구속·체포·압수수색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강제수사의 경우, 영장 발부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것은 법관이지만, 그에 앞서 검사가 한 차례 더 검토하도록 헌법에 명시된 것은 불필요한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검찰은 설명한다. 경찰에 영장 청구권을 부여하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 그 폐해는?
검·경의 힘겨루기와는 별도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과도한 권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이다. 그동안 검찰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해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손에 쥐고 정치적 수사도 자행했다. 전 정권 인사나 야권 인사를 겨눈 표적 수사·먼지떨이 수사를 벌이면서도, 현직 대통령이나 여권 인사가 관련됐거나 정권에 부담되는 수사는 뭉개는 방식으로 집권 세력에 충성을 다한 검사들이 있었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이런 검찰 수사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한국 사회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불법 자금 수수 의혹 수사에서 목도했다.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다. 검찰이나 검찰 출신이 관련된 사건에서만큼은 검찰 칼날이 유독 무뎌졌다. 검찰은 책임을 묻지 않거나, 문제를 덮음으로써 ‘제 식구’에게 면죄부를 줬다. 그런 대표적 사례가 바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다.
2013년 경찰은 검찰 출신인 김 전 차관에게 제기된 ‘별장 성접대(성폭행)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에 체포영장, 압수수색영장, 통신영장 등을 수차례 신청하지만 검찰은 거부한다. 또한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뒤, 김 전 차관을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은 정권이 바뀐 뒤에야 2019년 6월 그를 성접대를 포함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하지만, 이어진 재판에서 김 전 차관은 면소 또는 무죄를 확정받는다. 면소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법이 사라졌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재판부가 사건 실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판결이다. 앞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별장 성접대 의혹은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진상 규명과 단죄의 시기를 놓친 것이다.
‘제 식구 감싸기’ 수사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가 2021년 국회에 제출한 ‘검사 공무원 범죄 접수 및 처리 현황’을 보면, 2015년부터 2021년 8월까지 검사가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 가운데 기소나 불기소 등으로 처분된 사건은 1만 8,904건이었다. 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19건으로 비율로 따지면 0.1%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전체 형사사건 기소율이 32.9%에 이르는 것에 견주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전체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1,000명 가운데 329명꼴로 재판에 넘겨진다면, 검사가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에서는 재판에 넘겨지는 검사가 1,000명 가운데 1명꼴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해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검사만이 기소할 수 있었고(기소독점주의), 기소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검사의 재량이었다(기소편의주의). 기소 여부가 검사의 재량에 달렸다는 것은 사건을 덮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소·고발 사건에서 검사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재정 신청 등의 제도가 있지만, 이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기회가 주어지기 힘든 구조다. 모든 사건을 수사할 수 있고, 유일하게 자신들만이 범죄 혐의자를 재판에 넘길 수 있으며,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할 수 있는 조직. 그러면서 어떤 견제도 받지 않아 온 조직이 바로 검찰이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한국 사회에서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하게 제기됐던 때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때다. 주요 대선 후보가 모두 ‘검찰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들 가운데 특히 강력한 검찰개혁 공약을 내세운 이가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아마도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바라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는 자신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에서 이렇게 썼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또한 운명이었을까. 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위해 자신이 발탁한 검찰 수장이 다른 당 대선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돼 정권 교체를 하고, 검찰권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를 하리라고는 그 당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일이다. 공수처라는 독립된 기구가 검찰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맡아 이들 권력 기관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그린 검찰개혁의 청사진이었다.
이와 관련한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문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18년부터다. 그해 1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수처 신설 등의 내용을 담은 권력 기관 재편 방안을 발표한다. 같은 해 6월에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행안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합의한다. 법무부와 행안부가 합의 주체가 된 것은 국가행정기관의 설치 및 직무 범위를 정해놓은 정부조직법상 검찰청은 법무부 소속이고, 경찰청은 행안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강한 반대 속에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이듬해 1월 13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전담하는 공수처 설치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뒤 견고하게 유지돼 온 검찰의 기소독점 체제가 깨지고, 수사권 조정으로 같은 기간 이어져 온 검찰과 경찰의 수직적 관계에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2021년 1월 공수처가 출범하면서,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 우선권은 공수처가 갖게 됐다. 공수처법 시행 전에는 관련 수사를 주로 검찰이 해왔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검사, 특별·광역시장, 도지사, 교육감, 경무관 이상 경찰, 장성급 장교 등이다. 다만, 공수처는 이들 고위공직자 가운데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나머지 고위공직자에 대해선 수사는 할 수 있지만, 기소는 할 수 없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은 여전히 검찰이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 설치로 검찰의 기소독점을 깨뜨리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견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 과도하게 쏠린 권한을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그동안 제한 없이 이뤄져 온 검찰의 직접 수사는 수사권 조정법안 통과로 2021년 1월부터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축소됐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폐지됐다. 경찰은 검찰이 직접 수사 할 수 있는 6대 범죄 외의 일반 형사사건에서 수사종결권도 갖게 됐다. 다만,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 방안으로 영장청구권은 검찰에 그대로 남겨 뒀고,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와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정리하자면,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 축소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 부여로 압축된다.
검찰 힘 빼다 보니 비대해진 경찰 권력,
경찰국 논란으로까지 이어져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경찰로 넘기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바로 ‘공룡 경찰’의 탄생이었다. 풍선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검찰권을 축소하니, 경찰권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마련된 것이 바로 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 하에 지역주민의 치안업무를 자주적으로 수행하는 ‘자치경찰제’다.
기존 경찰 조직은 일원화된 구조였다. 경찰청을 정점으로 지방경찰청, 경찰서, 지구대로 이어지는 중앙집권적 피라미드형이었다. 하지만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자치경찰제로 경찰 조직은 △국가경찰 △수사경찰(국가수사본부) △자치경찰로 삼원화됐다. 경찰청장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온 경찰이 자치경찰제 시행으로 국가경찰은 경찰청장,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 자치경찰은 시·도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를 받게 된 것이다.
담당 업무를 보면, 자치경찰은 기존 경찰 업무 가운데 주민생활안전(여성·아동·청소년 보호 및 범죄 예방, 안전사고 예방, 긴급구조)과 교통(교통법규 위반 및 음주운전 단속) 등 민생과 관련한 분야를 맡는다. 수사경찰은 말 그대로 살인, 상해, 성범죄 등 수사업무를 담당하고, 국가경찰은 정보, 보안, 외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지휘체계 분리만으로는 강화된 경찰 권한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언급한대로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제한되면서 6대 범죄 외의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게 됐고,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도 받지 않게 됐으며, 수사종결권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찰은 2024년부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간첩수사로 대표되는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는다. 경찰권 통제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경찰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8월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경찰국 신설 추진을 두고 ‘경찰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논란이 일자, “경찰보다 더 중립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