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차율이
부산과 삼천포 바다를 보며 꿈꾸며 자랐습니다. 어릴 때 커서 인어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는 도서관 사서가 되었습니다.
건국대 대학원 동화미디어 창작학과에서 동화 공부를 하였고, 2014 한국안데르센상, 제22회 눈높이아동문학상, 제1회 교보문고 전래동화부문 최우수상, 제3회 NO.1 마시멜로 픽션 대상을 받았습니다. 쓴 책으로 『묘지 공주』, 『인어 소녀』, 『미지의 파랑 1, 2』, 『괴담특공대 1, 2』, 『거북이 버스』, 『고양이털 호텔』이 있습니다.
그린이 가지
한국과 동양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립니다.
개인 창작활동과 더불어 광고, 책 삽화 등 여러 영역에서 협업하고 있습니다.
초판 1쇄 발행 2022년 4월 22일
글쓴이 차율이
그린이 가지
펴낸이 조영진
펴낸곳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출판등록 제406-2012-000082호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29(서패동) 2층
전화 031-955-9680~1
팩스 031-955-9682
홈페이지 www.goraebook.com
이메일 goraebook@naver.com
글 ⓒ 차율이 2022|그림 ⓒ 가지 2022
ISBN 979-11-89239-99-2 75810
* 책의 내용과 그림은 저자나 출판사의 서면 동의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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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텍스트형 전자책 제작 지원’ 선정작입니다.
1. 『어우야담』 | 김빙령과 인어
먼 옛날 강원도에 흡곡 현령이 된 김빙령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김빙령은 여러 마을을 살피려 순행을 하다가 고성 바닷가에 사는 어부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지.
마당에 있던 어부가 다 쓴 어망의 물기를 탈탈 털어 내자 호기심이 솟아났어.
“오늘은 무슨 물고기를 잡았는가?”
“인어 여섯 마리를 잡았습죠. 둘은 창에 찔려 죽고 넷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어부는 기분이 좋아 참새처럼 재잘댔지. 조상이 덕을 쌓아야 잡을 수 있다는 희귀한 인어가 생겼으니 이제 팔아서 부자 될 일만 남았거든.
김빙령은 깜짝 놀랐어. 인어는 서책으로만 접해 보았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었거든. 목격담이 많아 존재 여부가 긴가민가했는데 지금이 기회인 듯했지.
“참말이요? 보여 줄 수 있소?”
어부는 썩 내키지 않았어. 혹여나 값비싼 인어를 달라고 하면 곤란하잖아. 하지만 흡곡을 다스리는 현령이 간곡하게 졸라 대니 거절하기가 어려웠지. 어부는 마지못해 집 뒷산으로 안내했어.
근처 작은 연못에 정말 인어가 넷이나 있었어. 모두 네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해맑은 아이였지.
김빙령은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어.
“참으로 어여쁘구나!”
인어의 콧마루는 우뚝 솟았고 흑백의 눈은 빛났으며 눈동자는 샛노랬어. 노란 수염이 있고,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었지. 귓바퀴와 손발의 주름이 뚜렷했어. 몸은 옅은 붉은색이거나 희었고 등에는 옅은 흑색의 문양이 있었지. 남녀의 생식기도 있고 무릎을 껴안고 앉는 것까지 전부 사람과 다름없었어.
김빙령이 물가 돌에 앉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자, 어부가 연못에서 아이 인어 하나를 꺼내 만져 보라며 건넸어.
“피부가 보들보들하니 정말 사람 같군요.”
김빙령이 인어를 무릎에 앉히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어. 달처럼 노란 눈이 참으로 신비로웠지.
하지만 인어는 김빙령이 낯설었는지 으앙, 울음을 터트렸어. 흰 눈물을 비처럼 줄줄 흘렸지.
“어, 어. 울지 말거라.”
김빙령이 인간 아이처럼 어르고 달랬지만 쉬이 눈물을 그치지 못했지. 어미의 품이 그리워서 그런 걸까. 어쩐지 가련한 감정이 들었어.
“인어를 놓아주면 안 되는가?”
어부가 학을 떼며 도리질을 했어.
“아휴, 이 아까운 걸! 절대 안 됩니다.”
“왜 아까운가?”
어부는 불안한 눈빛으로 김빙령의 품에서 인어를 낚아채 꼭 안았어. 팔아서 부자가 된다는 말을 하면 전부 뺏길까 봐 대충 둘러댔지.
“인어의 기름을 취하면 무척 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썩고 악취 나는 고래기름과는 비할 바가 안 됩니다.”
밤을 밝힐 호롱불에 인어 기름을 쓰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거든.
어부는 단호했지만, 김빙령도 쉬이 물러서지 않았어. 어부에게 인어는 기름을 짤 수 있는 한낱 물고기였겠지만, 김빙령에겐 그렇지 않았거든.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소중해. 특히나 사람과 똑 닮아 눈물까지 흘리는 인어를 겨우 기름을 얻기 위해 죽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바다로 보내 주시오. 값은 내가 넉넉히 쳐 주겠네.”
“예에? 인어 잡기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김빙령은 한동안 어부랑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했어.
도저히 협상이 되지 않자 김빙령은 강제로 인어를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내 줬지.
풍덩! 풍덩!
바닷물이 튀는 유쾌한 소리에 어부는 에구구 앓는 소리를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어. 김빙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봤어.
“멀리멀리 가서 다신 잡히지 말거라.”
어린 인어 넷은 거북이나 자라가 헤엄치는 것처럼 엎드려서 헤엄을 쳐 갔어. 인어들은 풀려난 게 기쁜지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김빙령을 향해 생글생글 웃어 댔지. 거리가 벌어졌다 되돌아오자 김빙령은 어부의 눈치를 보며 가슴이 조마조마했지.
“거참, 어여 가래도.”
김빙령의 타는 속도 모르고 아이 인어들은 배시시 웃기만 했어. 멀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세 번이나 더 반복한 뒤에 바닷속으로 영영 가 버렸지.
철썩대는 파도 소리에 시원섭섭한 마음을 실어 보냈어.
“인어를 보게 되다니. 참 기이하구려.”
“저들은 그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큰 인어는 사람 크기만 합니다.”
어부의 불퉁한 말투에 울적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어.
김빙령이 미안하다며 인어 값을 섭섭지 않게 주었지. 그제야 어부가 기뻐하며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었어.
“예전에 옆 동네 친구가 간성 포구에서 여인 인어를 잡은 적이 있는데요. 피부가 눈처럼 희고 고왔고, 장난을 치니 웃으면서 좋아했답니다. 조금 놀다 바닷속에 놔주었는데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두어 차례 다시 놀다가 갔다고 합니다.”
김빙령은 어부의 집에서 보고 들은 것이 참 인상 깊었어. 그래서 집에 돌아와 『태평광기』라는 고서를 찾아보니 ‘해인어’라는 인어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
인어 남녀는 마치 사람과 닮 았다. 바닷가 사람들이 암컷을 잡으면 못에 넣어 기르면서, 가끔 꺼내 함께 지내면 마치 인간 여인과 같이 있는 기분이 났다.
세상엔 참으로 믿기 힘든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어.
이번에는 어린아이 인어를 보았지만, 언젠가 어른 인어도 꼭 보고 싶었지. 김빙령은 넓고 푸른 바다에서 인어와 함께 웃고 즐기는 상상을 하며 남몰래 웃었지.
“동해에서 인어를 다시 보게 될까.”
2. 거문도 | 신지께가 된 은갈치
옛날 옛적 거문도 바닷속에 천년 묵은 은갈치가 살고 있었어.
은갈치는 늘 똑같은 바다 풍경, 똑같은 음식, 똑같은 놀이 전부 너무너무 지겹고 따분했어. 뭔가 새롭고 재밌는 일이 없을까 궁리하다 기발한 생각이 번쩍 들었지.
“그래! 뭍에서 살아 보는 거야!”
그곳에선 대체 무엇을 먹고 보고 놀지 궁금했어.
은갈치는 하고 싶은 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렸지. 아는 게 많은 고두리(고등어의 옛말) 영감에게 쪼르르 헤엄쳐 갔어. 영감은 동도·서도·고도 세 개로 이루어진 섬, 삼호의 신이었거든.
“영감님! 영감님! 나 물속에서 살기 싫어요! 뭍에서 살 방법 없어요?”
은갈치는 눈을 번뜩이며 고두리 영감을 봤어. 영감은 배가 허옇고 등은 푸른 생선인데 사람 키만 한 은갈치에 비해 몸 크기가 반의 반도 안 됐지.
“미안해서 어쩌나. 뭍에 살도록 도와줄 능력은 없구나.”
“히잉. 영감님 미워!”
고두리 영감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은갈치는 매우 실망했어. 신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은갈치는 삼호의 안쪽 바다로 돌아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어. 뭍에서 살 수 없다면 콱 죽어 버리고 싶었지.
“뭍에서 살고 싶다…… 뭍에서 살고 싶어…….”
은갈치가 매일매일 중얼거린 말소리가 남해 바다에 널리널리 퍼져 갔어.
이 소문은 물고기 아가미를 건너 건너 대왕오징어에게까지 흘러 들어갔지. 오지랖이 넓은 대왕오징어는 물어물어 은갈치의 집으로 찾아갔어.
“내가 뭍에서 살 방법을 알려 줄까?”
“알려 줘. 당장 알려 줘!”
은갈치가 냉큼 기운 차리고 꼬리를 한들한들 흔들었어.
“소원을 이루고 싶으면 남해 용왕님에게 가 봐. 뭍에서 ...